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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현병철 임명 강행은 엠비 임기 말 ‘몽니’ |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의 재임명을 강행했다. 일부에서 연임설이 흘러나올 때까지도 설마설마했으나 역시 ‘불통’ 대통령의 고집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현 위원장에 대해 여야는 물론 국내외 인권단체들까지 모두 나서 연임은 안 된다고 해왔음에도 이를 간단히 걷어차 버린 것이다.
특히 새누리당이 김영우 대변인을 통해 이달곤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연임 반대 의사를 전했음에도 결국 이를 무시해버린 것은 사실상 임기 말 대통령의 오기 내지 몽니에 가깝다. 최근에는 현 위원장이 임명했던 김옥신 전 사무총장마저 현병철 인권위에 대한 우려를 나타낼 정도로 반대 여론이 높았는데 오로지 이 대통령과 청와대만 귀를 닫고 있었던 셈이다. 막무가내 정치, 일방통행 정치의 전형이다.
현 위원장이 연임되긴 했으나, 국내외에서 인권위의 위상 추락은 물론이거니와 내부적으로 조직 운영조차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 국제앰네스티가 그의 연임을 우려하는 성명을 낸 바 있는데다 인권위 직원의 90%가 반대 의견과 함께 광고까지 낼 정도면 조직이 정상적으로 역할을 하는 건 힘들다고 봐야 한다. 지금보다 더 심각한 ‘식물인권위’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인권위는 독립성을 거론하는 것조차 낯부끄러울 지경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인권위의 이라크 파병 반대 입장 표명 뒤 노 대통령이 “인권위는 그런 일 하라고 만든 기구”라는 말로 논란을 잠재웠던 일화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가 돼버렸다. 정부기구의 불법사찰로부터 민간인을 보호해야 할 인권위원장이 대통령실장을 만나 조율했다는 언론 보도는 인권위의 현주소를 잘 드러내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 대통령은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줄줄이 비리 혐의로 감옥에 들어간 뒤 잠시 반성 모드를 유지하는 듯하더니 올림픽을 계기로 다시 대외 활동에 나섰다. 그러나 독도 방문을 둘러싼 논란이 간단치 않은 가운데 이번에 다시 인권위원장까지 재임명을 강행한 것은 뒷감당조차 어려운 ‘패착’임이 분명해 보인다.
홍일표 새누리당 대변인은 “아쉬움이 있다”며 “현 위원장이 인권 수호에 더욱 매진해 비판적 여론을 불식시켜 주기 바란다”고 밝혔지만 과연 그런 논평 한 줄로 끝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그 많은 문제를 덮고 그냥 넘어갔다가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당장 대선을 치러야 할 박근혜 의원뿐 아니라 당에도 여권의 저열한 인권의식을 드러내주는 사례로 두고두고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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