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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8.22 19:08 수정 : 2012.08.22 19:08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강력한 검정 교과서 수정권한을 주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교과부가 입법예고했다고 한다. 장관이 출판사에 교과서 수정을 명령할 수 있고, 출판사가 불응하면 교과서의 검정합격을 취소하며, 해당 출판사는 3년 동안 검정 신청을 할 수 없게 하는 것이 뼈대다. 한마디로 말해 교과부 장관이 제 입맛대로 교과서를 손질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교육의 다양성과 자율성이 중요한 21세기에 국가가 교과서를 획일적으로 통제하던 20세기로 시곗바늘을 되돌리겠다니, 교과부의 퇴행적 사고에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교과부는 검정 교과서 관련 사항이 대통령령인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의 적용을 받아 행정처분의 근거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법 개정의 이유로 든다. 하지만 이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형식논리일 뿐, 속셈은 정부의 교과서 통제권 강화에 있음이 분명하다. 현행 규정보다 교과부 장관의 처벌 권한을 강화한 대목이 단적인 증거다. 지금은 출판사가 장관의 수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해당 교과서의 검정합격을 취소하거나 1년 동안 발행을 정지시킬 수 있는데, 법 개정안은 3년 동안 검정 신청 자체를 아예 할 수 없도록 못박았다. 검정합격의 효력을 정지하는 대신 3000만원 이하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규정도 만들었다. 이런 가혹한 제재 아래서 출판사가 장관의 수정명령을 거부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국가의 과도한 교과서 개입이 허용되면 정권의 부침에 따라 교과서 기술이 들쑥날쑥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우리 사회는 2008년 교과부가 금성출판사의 고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뉴라이트 세력의 주장대로 수정하라고 명령했다가 한 차례 큰 진통을 겪은 바 있다. ‘도종환 시인 작품 삭제 논란’ 같은 한심스런 일도 심심찮게 발생할 수 있다.

교과부의 수정안은 18대 국회 시절인 2010년에도 국회에 제출됐었다. 하지만 야당과 시민사회단체가 반발하고, 뚜렷한 기준도 없이 교과부 장관이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문제라는 소관 상임위의 판단에 따라 폐기됐다. 그런데도 19대 국회가 시작되자마자 교과부가 또다시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은 오기로밖에 볼 수가 없다.

교과부는 고집을 부리지 말고 개정안을 철회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2000년 이후에 검인정 체제가 도입·확대된 배경을 곱씹어봐야 한다. 국정 교과서 체제로는 권력의 자의적 개입을 차단할 수 없고, 다양하고 자주적인 교육의 실현이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시대 흐름을 거슬러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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