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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안대희 전 대법관의 부적절한 처신 |
대법관은 그 어느 직책보다도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청렴성,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자리다. 이는 재임 기간뿐 아니라 퇴임 뒤에도 마찬가지다. 항상 공익을 우선하여 자신을 경계하고, 전관예우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바른길을 걷기를 많은 국민은 기대한다. 이런 국민의 열망을 반영하듯 최근 법조계에는 작지만 신선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퇴임한 대법관들이 대형 법률회사에 취업하거나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과 박시환·김지형 전 대법관 등이 그런 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법조계의 이런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퇴임사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의 정치쇄신특별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고도의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자리에서 하루아침에 당파성으로 똘똘 뭉친 곳에 둥지를 튼 것이다. 김황식 총리가 과거 대법관에서 감사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것을 두고도 말이 많았으나 이번 경우는 그런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다. 차라리 법률회사에 취업한 것이 나았다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부적절한 처신이다.
새누리당으로서는 불법 대선자금 수사 등으로 쌓인 안 전 대법관의 청렴·강직한 이미지가 박 후보의 대선 승리를 위해 활용가치가 높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안 전 대법관 영입이 대법원의 권위와 위상에 어떤 손상을 끼칠지 조금이라도 고민했다면 이런 잘못된 영입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국민은 이제 대법관들을 바라보며 ‘겉으로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척하지만 내심 정치판을 기웃거리고 있겠지’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것이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국민의 믿음도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손을 내민 박근혜 후보나 이런 제의를 받아들인 안 전 대법관 모두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안 전 대법관이 정치쇄신을 담당할 적임자인지도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새누리당은 권력형 비리 척결과 공천비리 타파 등을 정치쇄신의 전부인 것처럼 말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정치쇄신의 요체는 오히려 권위주의적 정당구조의 개혁, 당내 민주주의의 확립, 정치권의 소모적인 대립과 갈등 청산 등 정치구조와 문화의 개선에 있다. 이런 과제는 사실 안 전 대법관의 전공도 아니다. 새누리당이 4·11 총선의 공천비리 의혹은 적당히 꼬리 자르기로 넘어가려고 하면서 정치쇄신을 외치는 것도 자가당착이다. 대중에게 인기 높은 인사를 전면에 내세워 ‘이미지 정치’를 일삼는 구태의연한 행태야말로 정치쇄신의 첫째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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