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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저소득층을 벼랑으로 모는 ‘부양의무자 기준’ |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에서 제외한 8만4908명 가운데 61%인 5만1820명이 실제론 극빈층인데도 부양가족 기준을 충족했다는 이유로 탈락했다고 한다. 생활 형편은 기초수급자와 다를 바 없는데 부양가족의 소득 때문에 갑자기 생계·주거·의료 급여 등이 끊어진 사람들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독소조항’으로 비판받아온 부양의무자 기준이 저소득층을 벼랑으로 몰아넣고 있음이 새삼 확인된 셈이다.
지난해에 기초수급자가 8만여명이나 대거 탈락한 것은 정부가 사회복지통합관리망(사통망)으로 수급자를 엄격하게 가려낸 탓이 크다. 대법원 가족관계기록부, 국세청 일용직근로자 소득내역, 국민연금, 실업급여 등 수백종의 전산정보가 연계된 이 시스템을 활용해 정부는 부정수급자를 솎아낸다. 그 결과 201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2년6개월 동안에만 모두 15만4305명이 기초수급자에서 제외됐다. 기초수급자 수는 2009년 157만명에서 올 9월에 141만명으로 크게 줄었다.
정부의 이런 물샐틈없는 검증체계는 ‘법대로’에는 맞을지 모르나 저소득층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대표적인 게 바로 부양의무자(1촌 직계혈족과 그 배우자) 기준이다. 현행 제도는 부양의무자 소득의 일정 부분을 부양비로 간주해 기초수급자의 소득 등과 함께 심사 기준으로 삼는다. 이 때문에 경남 거제시에 사는 이아무개(78)씨의 경우, 지난 6월 기초수급자 확인조사에서 딸과 사위의 소득에 따라 간주된 부양비가 최저생계비를 6600원가량 초과했다는 이유로 자격을 잃었다. 이씨는 딸 내외의 도움 없이 혼자 살아온 처지를 제대로 소명하지 못했고, 결국 지난 8월 거제시청 앞에서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
문제는 이씨의 사례가 결코 특별하지 않다는 데 있다. 201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자료를 보면,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기초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사람이 103만명에 이르지만, 이들 가운데 70%는 부양의무자로부터 한푼도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초생활보장제의 취지는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국가가 생계·주거·교육·의료 등의 최저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부양의무자 기준은 그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부양의무자 기준을 없애 국가 지원을 받지 못하는 ‘빈곤 사각지대’가 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뜩이나 경제 사정 악화로 가계부채가 늘고 생계형 범죄와 자살이 급증하는 등 저소득층의 삶이 추락세인데 정부가 지원 대상까지 줄여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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