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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박근혜 후보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대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한때 부동의 1위였던 지지율이 깨진 지는 이미 오래됐고 최근 여론조사 결과 반등의 기미도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 대선 캠프는 캠프대로 잇따른 불협화음과 갈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다.
박 후보가 직면한 위기는 호가호위 등을 일삼는 일부 측근 인사들 탓만은 아니다. 이들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위기의 근본 원인은 바로 박 후보 자신에게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시대정신의 부족’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리더십,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 역사인식 등이 시대의 흐름과 어긋난 상태에서 선거구호만 앞서 가다 보니 당은 계속 삐걱대고 박 후보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된 행보를 이어가는 것이다.
박 후보의 고질병으로 지적돼온 소통하지 않는 리더십의 문제는 최근의 당내 사태에서 또다시 증명됐다.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지도부 전면쇄신과 친박 측근들의 2선 후퇴 요구가 나오기 무섭게 박 후보는 “지금은 선거를 위해 힘을 모을 때”라며 일언지하에 쐐기를 박았다. 당내 여론에 귀를 기울여 유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목소리를 ‘불필요한 잔소리’쯤으로 받아들이며 ‘입을 다물라’고 윽박지를 때 조직이 건강하게 작동될 리 없다.
경제민주화 문제를 둘러싼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이한구 원내대표의 갈등에 대한 박 후보의 모순된 태도도 마찬가지다. 재벌의 지배구조 개혁 등 경제민주화의 핵심 사안에 대한 두 사람의 소신이나 철학은 물과 기름과 같다. 그런데도 박 후보는 “두 사람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억지를 부린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박 후보의 진정성에 누구나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한광옥 전 민주당 상임고문을 영입한 것도 구태의연하고 식상한 정치행태다. 박 후보는 국민대통합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호남표를 끌어들이기 위한 정치공학적 포석임을 모를 사람은 없다. 한 전 고문이 호남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그는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사건에 연루돼 유죄판결을 받은 전력도 있어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정치와 경제 쇄신의 양대 축이라 할 김종인·안대희 두 사람이 동시에 반발하고 나선 것은 박 후보가 처한 상황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박 후보는 문재인·안철수 후보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에 직면해 있다. 박 후보가 위기 국면에서 탈출하는 것 역시 이 싸움에서 이겨야만 비로소 가능하다. 박 후보의 선택을 주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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