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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재벌개혁, 공약경쟁 넘어 입법경쟁 하라 |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가 어제 7대 재벌개혁 과제를 발표했다. 금산분리 강화, 순환출자 금지, 계열분리명령제 도입 검토 등의 방안을 담고 있다. 이미 재벌개혁 방안을 내놓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강도 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으나 큰 방향은 비슷하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쪽도 순환출자 금지나 금산분리 강화 등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세 후보가 재벌개혁 공약 경쟁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
하지만 세 후보의 공약대로 재벌개혁이 순조롭게 추진될지는 불투명하다. 지난주 문재인 후보가 재벌개혁 방안을 발표하면서 “재벌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할 철학과 비전, 구체적 정책과 주체적 역량이 부족했음을 솔직히 인정한다”며 “두번 다시 실패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재벌개혁을 실행하기가 그만큼 어려웠음을 토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도 그때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고 보기 어렵다.
재벌개혁이 늘 말로만 그치고 실패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재계의 반발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철학과 논리의 부족이었다. 재벌개혁이 논의될 때마다 재계는 ‘재벌개혁을 강행할 경우 기업의 투자 의욕을 저하시켜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노골적인 반감을 보여왔다. 특히 경기 침체로 국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이런 논리가 먹혀들 소지가 다분하다. 따라서 재벌개혁 공약 개발도 중요하지만 재벌개혁이 국민들의 일상적인 삶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지는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는 논리 개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정치권이 재계의 로비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 상태에서 재벌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지도 문제다. 그동안 재벌개혁이 논의될 때마다 정치권 밖보다 정치권 안의 반대세력 때문에 재벌개혁이 좌절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친기업을 표방하는 보수정당의 적잖은 의원들은 재벌개혁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다수당인 새누리당 안에서 경제민주화를 둘러싸고 계속 딴소리가 나오는 현실은 재벌개혁이 과연 제대로 추진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게 한다.
결국 아무리 재벌개혁을 외쳐도 국회에서 관련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말짱 헛일이다. 각 후보들이 재벌개혁에 진정성이 있다면 당장 입법화 작업에 착수하는 게 필요하다. 우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국회에 재벌개혁을 위한 공동 협의체를 구성해 입법 가능한 법안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말로만 백번 재벌개혁을 외치는 것보다 훨씬 더 진정성 있고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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