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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07 20:43 수정 : 2005.08.25 20:28

사설

우리에게 매우 낯익은 풍경의 하나는 대형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관련된 전·현직 고위공직자들이 “나는 모른다”고 발뺌하는 모습이다. “내가 모든 것을 털어놓고 책임지겠다”고 통크게 나서는 사람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체면이야 어찌됐든 일단 내 몸 하나 빠져나가고 보자는 ‘면피 의식’은 세월이 바뀌어도 한결같다. 이번 국정원 불법도청 사건도 어김없다. 김영삼 정부 때든 김대중 정부 때든 당시에 책임있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는 모른다”로 일관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 기조실장을 지냈던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은 어제 기자간담회를 열어 “정보보고 라인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몰랐다”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임동원 전 국장원장 역시 “불법감청에 대해 전혀 보고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이들이 불법도청 사실을 정말 몰랐는지는 앞으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대목이지만, 설사 몰랐다고 해도 그것이 자랑할 일인가. 게다가 문 의장은 “안기부 병폐를 청산하느라 다른 일에는 신경조차 못 썼다”고 말했는데, 안기부 최대 병폐인 국내 정치, 불법도청을 놓아두고 도대체 무엇을 청산하느라 바빴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번 사건에 국민이 격분하고 허탈해하는 것은 줄곧 정부에 속아 왔다는 게 일차적 이유지만, 이런 무책임한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겼다는 데서 오는 울화증도 크다. 제대로 된 고위공직자라면 결백을 주장하기 앞서 자신의 ‘무능’을 반성하고 사과하는 게 최소한의 도리다. 그런데 마치 남의 일 말하듯이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둘러대는 것은 자기 얼굴에 스스로 침을 뱉는 격이다. 분명한 것은 무능은 자랑이 아니라 죄악이다. 게다가 문 의장은 현재 집권여당의 최고책임자가 아닌가.

눈을 검찰로 돌려보아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발생한 ‘국정원 도청 의혹 사건’에 대해 “국정원이 도청을 하고 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고 현재의 기술로는 휴대전화 도청이 불가능하다”며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나쁘게 보면 봐주기 수사를 한 것이고, 좋게 보면 국정원에 감쪽같이 속은 무능한 검찰인 셈이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는 이번에 불거진 불법도청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곳이다. 과연 이 무능한 검찰을 또한번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답답할 뿐이다.

청와대가 “참여정부에서는 불법도청이 일절 없다”고 단언했지만 많은 국민들이 냉소하는 것도 정부의 이런 무책임한 태도에 질렸기 때문이다. 또다시 어느 때가 되면 현정부의 고위공직자들이 “그럴리가 없을텐데”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번에는 믿어주세요’라고 강요하기에는 국민들이 너무나 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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