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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불법사찰, ‘몸통’ 빼고 ‘깃털’만 단죄하고 끝내나 |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 관련자들에게 어제 법원에서 징역 2년6월~10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시대착오적인 인권유린 행위에 대해 실형이 나온 것은 당연한 결과지만 아쉬움 또한 크다. 사건의 실체는 드러내지 못한 채 몸통이 빠진 상태에서 불법 실행의 하수인들에게만 단죄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검찰의 꼬리자르기 수사에 대한 여론의 비난이 빗발치자 여야는 지난 7월 19대 국회 개원협상 과정에서 이 사건에 대해 국정조사를 벌이기로 합의했지만 약속은 휴짓조각이 돼버렸다. 이런 상태로 진실규명이 반쪽으로 끝나게 된다면 그 책임은 수사 검사는 물론 약속을 어긴 정치인들에게도 엄중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번 사건은 불법사찰이 처음 폭로된 뒤 청와대와 정부·여당은 사건을 은폐·축소하기에 급급했고 검찰 역시 수사와 재수사에 이르기까지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수사하는 양상으로 진행됐다.
기소된 청와대와 총리실의 중간간부들은 영어의 몸이 됐지만 애초 불법사찰을 지시·기획하고 사찰보고서를 받아본 몸통과 사후 은폐·축소를 적극 주도한 청와대와 검찰의 고위층은 여전히 건재하다. 부하들만 감옥에 보내놓고 자기들은 충견 검찰과 거수기 의원들의 방패 속에 몸을 감추고 있으니 최소한의 양심도 염치도 없는 자들이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고백하면 부하들의 죗값이라도 줄어들겠지만 그들의 몸통은 그럴 만한 용기도 의리도 없다. 부하들만 처벌받고 끝내는 건 공평하지도 정의롭지도 못하다.
권재진 법무장관은 사건 당시 불법사찰과 사후 증거인멸 과정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책임자였다. 진경락·장진수씨 등의 증언과 진술서 등 민정수석실의 역할을 보여주는 자료가 한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야말로 가장 유력한 몸통 후보다. ‘브이아이피(VIP)께 일심으로 충성하는 별도 비선 친위조직’이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지휘하고, 보고는 ‘공직윤리지원관→비에이치(BH·청와대) 비선→브이아이피(또는 대통령실장)로 한다’고 돼 있는 ‘일심 충성 문건’이 그 증거다.
박근혜 후보는 총선 전 “민간인 사찰은 반드시 근절돼야 할 중대한 문제”라고 밝혔고, 새누리당 비대위원들은 성명까지 내어 권 장관 사퇴를 요구했다. 그래 놓고 선거 뒤엔 일언반구도 없다. 박 후보와 새누리당이 총선이 끝났다고 모른체한다면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사기집단이란 소리를 안 들으려면 약속대로 어떤 형태로든 진상규명에 즉각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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