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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새누리당의 무책임하고 정략적인 NLL 공세 |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이 열흘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어제 ‘통일이 될 때까지 엔엘엘을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한다’며 슬쩍 끼어들었다. 통일비서관 출신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의 통일부 국정감사 발언으로 촉발된 논란은 새누리당에 이어 이 대통령까지 가세하면서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핵심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한 회담에서 ‘엔엘엘 포기 발언’을 했느냐이다. 이에 대해 정상회담에 배석했던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김만복 전 국정원장, 백종천 전 청와대 안보실장은 ‘그런 발언을 한 사실이 없다’고 단언했다. 여기서 생산적인 논의가 되려면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먼저 내놔야 옳다. 일부 보수언론이 ‘관계자’의 입을 빌려 전하는 출처불명의 보도를 근거로, 녹취록을 폐기했느니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라느니 하며 정치공세를 할 일이 아니다. 가장 사실을 잘 아는 정상회담 배석자들의 발언을 뒤집을 수 있는 어떤 근거도 내놓지 못하면서 국정조사나 문서 공개 타령만 하는 것은 스스로 대선용 정략이라는 걸 시인하는 것이다.
애초 엔엘엘은 1953년 정전협상 당시 경계가 확정된 육상과 달리 해상에서 경계선이 정해지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의 이양호 국방장관이 말한 것처럼 “정전협정과 관계없이 우리 어선의 보호를 위해, 또 우리 해군 함정이 북측 가까이 못 가게 하기 위해 우리가 공해상에 그어놓은 선”이다. 하지만 북은 1973년부터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1999년에는 서해 5도를 모두 자기 영역에 포함하는 군사분계선을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유엔사령부가 이 선을 선포한 뒤 북이 20년 가까이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우리 군이 이를 방어선으로 삼으면서 사실상 경계선으로 굳어진 면이 있지만 법적으로 분쟁이 종결된 건 아니다.
엔엘엘과 관련해 남북이 유일하게 합의한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도 “남과 북의 해상 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 불가침 구역은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뒤 나온 10·4 남북공동선언엔 “남과 북은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해 공동어로수역을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과 각종 협력사업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치 문제 등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를 협의하기 위하여 남측 국방부 장관과 북측 인민무력부 부장 간 회담을 금년 11월 중에 평양에서 개최하기로 하였다”고 나와 있다. 공식 문서 어디에도 엔엘엘을 포기한다는 말이 없다. 이후 벌어진 국방장관 회담에서도 엔엘엘을 양보한 바 없다.
공식 문서에도 없고 실제 그렇게 일이 진행된 적도 없는데 ‘엔엘엘 포기 발언이 있느냐 없느냐’고 논란하는 것은 무용·무익하다. 더구나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북이 엔엘엘을 존중한다면 서해평화협력지대를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여권이 옭아매려고 하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도 엔엘엘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유력 대선 후보들이 모두 엔엘엘을 포기가 아니라 갈등 해결의 기점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이런데도 새누리당이 당장 공개하기 힘든 정상회담 대화록을 까발리자고 물고 늘어지는 건 죽은 대통령을 대선용 ‘유령 놀음’에 불러내자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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