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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원시적 유독화학물 제도, 쇄신의지 안 보인다 |
정부 조사 결과, 경북 구미 불화수소산(불산) 누출 현장의 수질과 토양 그리고 대기중 불산 농도가 모두 무해한 수준으로 나왔다. 사고 발생 후 10여일 이상 지난 뒤에야, 그리고 대기에 대해선 간이측정 방식을 적용할 때부터 사실 예상됐던 일이다. 사태 무마에만 급급한 정부의 태도가 역력하다. 이제 피해배상 등 ‘돈’ 문제로 몰고갈 것이니, 모처럼 조성된 유독화학물질에 대한 시민사회의 공적 관심이 사라지지 않을까 안타깝다.
이번 불산 누출 사고는 정부와 지자체의 원시적인 독극물 관리 및 방제 제도의 실상을 남김없이 드러냈다. 주민의 건강과 생명보다 기업을 우선하는 정부 태도도 드러났다. 사고 발생 직후 현장을 수습하던 노동자 4명 등 5명이 사망했는데도, 환경부는 사고 지점에서 불과 5m 떨어진 지점의 공기중 불산 농도는 1ppm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사망하거나 영구적 건강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농도를 30ppm으로 정하고 있는 미국 기준에 견주면 이해할 수 없는 수치다. 방제에 동원된 거의 모든 소방대원과 인근 마을 주민 수천명은 구토, 호흡곤란 등의 고통을 겪었다. 노동환경연구소가 인근 식물 시료의 불산 농도를 토대로 당시 대기 중 농도를 추산한 결과는 반경 1㎞ 안 0.1~15ppm이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독극물 관리나 방제계획, 주민의 알권리 문제를 얼버무리고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내년 2월부터 시행할 개정 유해물질안전관리법은 유독물 취급업체에 대한 주민의 관리·감독 및 감시를 제도화하지 않고, 안전진단, 등록 취소 등 모든 권한을, 기업체에 휘둘리기 쉬운 지방정부로 넘겼다. 미약한 처벌 규정은 그대로 유지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주민의 알권리는 형식적으로만 존재한다. 유독물 배출 및 이동량을 보고해야 할 업체의 기준은 선진국에 비해 느슨하기 짝이 없고, 설사 보고대상이라도 주민들은 그 위험성, 관리 실태, 취급 규모, 방제계획 따위를 알기 힘들다.
실태는 얼버무렸다 해도, 부실한 제도만큼은 제대로 바꾸기 바란다. 사람의 생명과 건강보다 기업을 우선하는 개발독재의 유습은 없애야 한다. 대통령선거 예비후보들의 각별한 관심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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