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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0.21 19:14 수정 : 2012.10.21 19:14

“사람을 말려 죽이려고 작정을 한 것 같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당사자인 강씨가 대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을 두고 언론에 밝힌 소감이다. 20년 넘게 자신을 옭아맨 ‘유서대필자’의 굴레를 벗기 위해 그는 다시 원점에서 법정공방을 벌여야 할 처지다.

엊그제 대법원1부(주심 양창수 대법관)가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하고 강씨 사건의 재심 개시를 결정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1992년 유죄판결이 내려진 지 20년, 2009년 서울고등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이 나온 지 3년 만에 진실을 밝힐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법원 결정으로 강씨가 누명을 벗고 무죄의 몸이 되지는 못했다. 오히려 대법원은 원심이 재심 개시를 결정하며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밝혔던 진실화해위의 필적감정 결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진실화해위는 1991년 분신한 김기설씨의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 글씨가 나중에 발견되자 2007년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및 7개 사설 감정기관에 필적감정을 의뢰해 김씨의 유서와 필적이 같다는 결론을 받아냈다. 원심은 이 감정결과에 근거해 강씨가 유서를 대필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새로운 증거가 유죄를 인정한 종전의 증거들보다 우월하지 않다고 봤다. 이는 대필 여부를 가리는 핵심인 필적감정에서 진실화해위와 원심의 판단을 뒤집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법원은 “전대협 노트의 발견 및 보관 경위를 둘러싼 관계자의 진술 내용에 여러 의문점이 남아 있고, 새로운 필적감정이 예단을 가지고 진행된 것으로 의심된다”는 등의 이유를 댔는데, 이런 설명이 국과수 및 7개 사설 감정기관의 판단을 뒤집을 만한 근거가 되는지 의심스럽다. 더욱이 대법원의 이런 판단이 앞으로 서울고법에서 진행될 재심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든다. 하급심 재판부가 대법원 결정에서 자유롭기 쉽지 않은 탓이다.

강씨는 이 사건으로 3년2개월을 복역하고 출소한 뒤 생활고에 시달리다 간암을 얻어 투병중이다. 서울고법은 재심 개시 결정을 3년이나 질질 끈 대법원과 달리 신속하게 재심을 진행해 강씨의 고통의 시간을 줄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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