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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왜곡과 오만’으로 가득 찬 박 후보의 정수장학회 인식 |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정수장학회 문제에 대한 기자회견을 한다고 예고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가 기존 입장과는 달라진 전향적인 의견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했다. 정수장학회의 문화방송·부산일보 지분 매각 추진에 따른 파문이 확산되면서 이번 기회에 정수장학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시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박 후보의 회견 내용은 실망을 넘어 경악스러운 수준이다. 기존 입장에 전혀 변화가 없음은 물론이고 분명한 역사적 사실마저 왜곡하는 내용이 수두룩했다.
우선 박 후보는 “정수장학회는 부일장학회를 계승한 것이 아니다”는 등 ‘강제헌납’ 사실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심지어 박 후보는 지난 2월 법원이 고 김지태씨 유족이 정수장학회를 상대로 낸 주식반환 청구소송을 판결하면서 ‘강압에 의한 증여’를 인정한 사실마저 부인했다. 법원이 이 청구를 기각한 것은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도 박 후보는 계속 “강압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해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고 우겼다. 박 후보는 나중에 “잘못 말한 것”이라고 정정했으나 가장 기초적인 사실관계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자신의 주장만을 앞세우는 어처구니없는 태도를 보였다. 인혁당 사건에 대해 ‘두 개의 대법원 판결’ 운운했던 것의 판박이다.
정수장학회를 둘러싼 논란을 덮어놓고 ‘정쟁’으로 몰아간 것도 전형적인 제 논에 물대기다. 최근 들어 정수장학회의 ‘정치적 장물’ 논란이 더욱 가열된 것은 이 재단이 지분 매각 대금을 활용해 박 후보의 선거운동을 측면지원하려는 계획 등을 세운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과거사 문제를 매듭짓고 공익재단화를 통한 사회환원 등의 근원적 해법을 마련하자는 여론이 비등해진 것은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도 박 후보는 사안의 본질을 외면한 채 자기한테 불리한 것은 무조건 정치적 트집잡기라고 규정했다.
박 후보가 “저는 장학회와 어떤 관계도 없고, 무엇을 지시하고 건의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최필립 이사장과 이사진이 국민적 의혹이 남지 않도록 모든 것을 투명하게 밝히고 장학회의 명칭을 비롯해 모든 것을 잘 판단해 달라”고 주문하고 나선 대목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날 회견에서 몇차례나 장학회가 “깨끗하고 모범적으로 운영돼왔다”고 주장해놓고 또다시 무엇을 ‘투명’하게 밝히라는 것인지부터 의아스럽다. 박 후보의 이런 언급이 새누리당 쪽의 부연설명처럼 최 이사장 및 이사진의 사퇴를 에둘러 촉구한 것이라면 더더욱 논리적 모순이고 자가당착이다.
정수장학회 문제와 관련해 많은 국민이 박 후보한테서 보고 싶어하는 것은 딱히 구체적인 해법이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역사에 대한 겸허한 자세,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잘못에 대해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을 지려는 노력, 사회적 갈등과 논란을 해소하려는 성실한 태도 등이다. 그런 모습이야말로 국정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덕목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 후보는 전혀 반대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또다시 확인된 것은 박 후보의 변하지 않는 아집과 편견, 국민의 정서에 역주행하는 불통과 고집이다. 게다가 그런 태도를 스스로 ‘원칙’이라고 포장해 자랑하는 데 이르러서는 아득한 절망감마저 느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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