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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록 대통령’을 ‘사초 파괴’로 몰아붙이는 적반하장 |
새누리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청와대 문건 목록 폐기를 지시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노 전 대통령이 역사에 남길 사초를 파괴했다는 것인데, 대통령 기록물 보전에 누구보다도 앞장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적반하장식 모독이다.
새누리당은 어제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어 ‘노무현 정권 영토포기 진상특위’를 ‘노무현 정권 영토포기 및 역사폐기 진상조사 특위’로 확대하고 국회에서 진상규명과 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5월 기록물 관련 회의를 주재하면서 문건의 목록을 삭제하거나 비공개로 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 공세의 근거다. 새누리당은 “노 전 대통령이 5000년 역사 최초의 역사폐기 대통령이란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누리당 주장은 대통령 기록물을 둘러싼 사실관계부터 그 기본 취지까지 모두를 왜곡한 것이라는 게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문제의 2007년 5월 노 전 대통령 발언은 대통령 기록물 보전 방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대통령 기록물은 공개, 비공개, 지정 기록물로 나뉘는데 지정 기록물은 1급 비밀 또는 그 이상을 기록한 것으로 15년에서 30년까지 공개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비공개와 지정 기록물도 후대를 위해 목록은 작성하되 비공개로 묶도록 했다. 이는 공무원들이 자신이 작성한 문건이 나중에 정치쟁점이 되는 것을 걱정해 아예 기록을 남기기 않으려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것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이런 조처는 후대를 위해 사초를 최대한 많이 남기자는 뜻이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5년 재임한 노 전 대통령이 825만여건의 기록물을 남긴 데 비해 그 이전 55년 동안 8명의 대통령이 불과 33만여건의 기록물을 남긴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대통령기록물 관리법을 제대로 정비한 이도 노 전 대통령이다. 새누리당이 노 전 대통령의 이런 뜻을 살피지는 못할망정 사초를 파괴한 대통령으로 몰아가는 것은 대선에 눈이 먼 무책임한 정치공세일 따름이다.
새누리당이 정수장학회 문제로 궁지에 몰리자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대통령 기록물 문제로 돌파하려 하는 모양이지만 자칫 제 발등을 찍을 수 있다. 퇴임을 앞둔 이명박 대통령의 기록물은 지난 4년 동안 54만여건, 한해 평균 13만5000건으로 참여정부 시절 한해 평균 40만건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스스로는 기록물을 제대로 남기지도 않으면서 남의 것을 두고 트집 잡아 선거에 이용하려 드는 것은 정치 도의상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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