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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문-안 후보, ‘원탁회의’ 권고 무겁게 받아들여야 |
범야권 시민사회 원로들로 구성된 ‘희망2013·승리2012 원탁회의’가 어제 기자회견을 열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에게 대선 후보 등록일 전에 후보 단일화를 이룰 것을 촉구했다. 원탁회의는 두 후보에게 ‘아름다운 연합정치’를 펼칠 것을 주문하면서,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될 때는 양 후보가 힘을 합하는 모습을 보여 국민이 실망과 걱정이 아닌 희망과 설렘으로 투표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탁회의의 이런 견해 표명의 밑바탕에는 단일화 무산 가능성에 대한 짙은 우려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치사에는 1987년 김영삼-김대중씨의 단일화 실패의 트라우마가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이번에도 문-안 후보가 단일화에 실패해 대선이 3자 구도로 치러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다. 두 사람 모두 후보 양보는 꿈도 꾸지 않는데다 구체적인 ‘단일화 방식’을 결정하는 일도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쪽이 지지층 확대를 위한 무한경쟁을 펼치며 감정의 골도 점차 깊어지고 있다. 재야 원로들이 어제 회견을 통해 던진 메시지도 ‘25년 전 양김 분열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경고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선에서 움직일 수 없는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25년 전의 ‘4자 필승론’이 착각이었던 것처럼 ‘3자 필승론’ 역시 헛된 망상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문·안 후보가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냉엄한 현실이다. 따라서 두 사람은 각자 단일 후보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되, 그렇다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좁은 사고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단일화 실패는 역사와 국민 앞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일임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이런 절실하고도 겸허한 마음가짐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다.
원탁회의가 주문한 것처럼 “양 후보 진영이 신뢰를 가지고 역지사지의 정신을 발휘”하는 것은 단일화 성사를 위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최근 논쟁거리로 떠오른 정치쇄신안 문제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내놓은 쇄신안만이 지고지선인 것처럼 고집하는 태도는 단일화를 더욱 멀어지게 할 뿐이다. 국회의원 수 축소 등을 뼈대로 하는 안 후보의 정치쇄신안에 대해 문 후보 진영이 “아마추어리즘의 발로”라며 연일 날 선 공격을 하는 것도 보기 좋지 않지만, 안 후보 쪽 역시 민주당을 ‘정치쇄신 의지가 없는 구세력’으로 몰아가는 자세는 옳지 않다.
단일화는 정권교체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국민의 감동이 수반되지 않는 단순한 정치공학적 결합은 오히려 역풍만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가치와 정책의 공유, 정치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비전의 제시, 후보들만의 통합이 아닌 세력의 통합과 외연의 확대 등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이런 과제는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게다가 후보 등록일까지는 시간도 그리 많지 않다. 두 후보 진영이 가슴을 열고 단일화를 위한 진지한 협의를 시작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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