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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존재 이유 스스로 부정한 기무사 |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기무의 뜻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비밀을 지켜야 할 중요한 일’이다. 굳이 군의 보안과 방첩을 맡고 있는 부대의 이름을 ‘국군기무사령부’라고 한 건 아주 중요한 일을 드러나지 않게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기무사가 썩을 대로 썩어 있는 실태가 생생하게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그제 국방부 조사본부의 발표를 보면, 기무사의 중령과 준위가 성매매를 한 뒤 경찰에 발각되자 민간인 2명을 내세워 대신 처벌을 받게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배득식 기무사령관 등 지휘부가 이런 사실을 보고받고도 묵인했다는 점이다. 이뿐 아니다. 이 부대 소속 한 중사는 4500여만원의 공금을 횡령했지만 처벌받지 않았다. 또다른 중령은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고도 보직 해임에 그쳤다. 일반 사회에서 벌어졌다면 당연히 엄벌에 처했을 이런 범죄들이 단지 그들이 기무사 소속이라는 이유로, 더 정확하게 말하면 ‘외부에 알려지면 부대 이미지가 실추된다’는 이유로 흐지부지된 것이다.
<한겨레> 보도 이후 국방부가 뒤늦게 수사를 벌여 이런 사실을 확인했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무마한 기획관리처장, 감찰실장, 감찰과장, 300기무부대장을 징계의뢰했지만, 실질 징계는 국방부가 아닌 기무사에서 담당하도록 했다. 한번 범죄를 무마했던 부대에 다시 징계를 맡긴 것이다. 성매매 범죄를 ‘정무적 판단’으로 뭉개도록 승인한 배 사령관에게는 아예 형사책임을 묻지 않았다. 국방장관의 구두경고에 그쳤다. 이러고도 어제 단행된 장군 인사에서 배 사령관이 살아남았으니, 국방장관 위에 기무사령관이 있다는 말이 나올 법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기무사의 안하무인, 무소불위에 대한 군 안팎의 원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이 대통령이 이전 정부에서 없앴던 독대 보고를 재개하는 등 기무사령관의 기를 살려준 것과 무관하지 않다. 2009년 쌍용차 집회 촬영, 지난해 조선대 교수의 이메일 해킹과 같은 불법 민간인 사찰 사실이 발각되기도 했다. 1990년 대대적인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윤석양 이병 사건 이후 국군보안사령부에서 기무사로 이름을 바꿨지만, 행태는 보안사 시절로 되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민간연구소는 ‘새 정부가 추진할 국가안보정책에 대한 제언’에서 기무사를 폐지하고, 그 기능을 지휘관 밑의 참모기능으로 통합해 군사업무를 일원화시킬 것을 제안했다. 경청할 만한 주장이라고 본다. 지금처럼 법 위에 군림하는 기무사는 군을 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약화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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