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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자치교육을 정치에 예속시키는 문용린씨 출마 |
대통령선거 예비후보들의 각축에 밀려 보이지도 않던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가 엉뚱하게도 교육의 정치화 논란과 함께 시야로 들어왔다. 교육만큼은 진영논리나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 국가 대계를 세우는 일에 전념하기를 바랐던 유권자들로선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어제 문용린 전 교육부 장관이 보수진영의 서울시교육감 단일후보 추대 기구인 ‘좋은교육감추대시민회의’의 간택을 받으면서 논란은 구체화됐다. 그는 추대회의가 예비후보 9명을 대상으로 면접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박근혜 후보 선거캠프의 국민행복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이었다. 교육 공약 개발을 총괄했던 자리다. 당적은 없다지만, ‘새누리당 후보’ 시비를 피할 수 없다.
공직선거법, 지방교육자치법은 과거 1년간 당적 보유자에게 교육감 출마를 금지하고, 정당은 교육감 선거에 일절 개입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아 놓았다. 그것은 온전히 교육의 독립성, 교육자치를 지키기 위함이었고, 과거 권위주의 체제 아래서 자행됐던 교육에 대한 정치적 간섭과 학교사회의 정치적 동원을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 이 정부 아래서도 정치가 교육을 좌지우지하는 바람에 임기 내내 교육계는 혼란스러웠다. 문씨가 이런 역사와 정신을 존중했다면, 아무리 주변에서 강권했다 해도 출마를 거부해야 했다. 게다가 그는 국민의 정부 시절 교육부 장관으로서 교육의 독립성, 교육자치 정착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교육의 독립성을 지키기는커녕, 교육을 정치화하는 데 앞장섰으니 그저 착잡할 뿐이다.
서울시교육감은 교육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영향력이 막대하다. 유치원과 초·중·고교 2200여곳의 관할권, 7조원의 예산권, 교사 8만명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고교 입시와 사교육 문제, 특목고 및 자사고와 학교 서열화, 학교 자치 등 초·중등교육 정책 수립에서 전국에 끼치는 영향은 가히 ‘교육 대통령’이라 불릴 만하다. 그런 서울 교육이 정치에 예속되게 되었으니 유권자의 현명한 판단밖에 기댈 게 없다.
시기적으로도 이번 교육감 선거는 대통령선거와 일체화되기 십상이다. 주요 대선 후보의 교육공약과 교육감 후보의 정책 경쟁은 함께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일부 캠프에서 순전히 득표의 확장을 위해 교육감 후보를 러닝메이트로 삼으려 한 것은 이런 까닭이다. 이런 상황에서 엊그제까지 박근혜 후보의 참모였던 문씨를 새누리당 후보로 보지 않을 유권자가 어디 있을까. 교육감 선거를 대선판으로 휩쓸어 넣어 교육을 정치화하고 서울 교육에 대한 정책 경쟁을 실종시킨 문씨와 새누리당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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