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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경악스런 원전 비리의 끝은 어디인가 |
도대체 원전 비리의 끝이 어딘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이번에는 보증서를 위조해 허접한 부품을 공급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비행기처럼 원전은 100만개가 넘는 부품으로 돌아가며 이 가운데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위험할 수 있다. 그런데 버젓이 일반 산업용·가정용 부품을 원전용이라고 품질보증서를 위조해 원전에 납품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지식경제부와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8개 부품공급업체가 품질보증서 60건을 위조해 납품한 제품은 237개 품목에 7682개나 된다고 한다. 금액으로 8억2000만원어치다. 문제의 부품은 퓨즈, 스위치, 다이오드 등으로 원전의 핵심 부품은 아니지만 높은 안전등급을 요구하는 설비에 들어가는 부품이라고 한다. 지금껏 발생한 원전 고장의 대부분은 부품 고장으로 인한 것이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품질보증서 위조가 2003년부터 최근까지 쭉 이뤄졌다는 점이다. 이런 사실마저 납품업체 종사자의 내부고발로 드러났다. 10년 가까이 범용 부품이 원전에 납품됐는데도 까막눈이었던 것이다. 내부고발이 없었다면 해당 원전 책임자는 물론 한수원, 원자력안전위원회, 지경부 등 감독기관도 까마득히 몰랐을 터이다.
지경부는 불량 부품이 집중 공급된 영광 원전 5·6호기의 가동을 중단하고 미검증 제품을 전면 교체하겠다고 한다. 또다른 외국 검증기관이 발급한 품질검증서를 전부 조사해 위조 여부를 가리기로 했다. 뒤늦었지만 당연한 조처다. 해당 원전이나 한수원 직원이 비리에 연루돼 있다면 당사자는 물론 관리 책임을 엄하게 물어야 한다.
원전 주변에선 크고 작은 비리가 끊이지 않는다. 고리 원전과 영광 원전에서 구매담당자가 뇌물을 받고 원자로의 이상징후를 포착하는 중요 부품을 순정품 대신 모방품으로 쓴 일이 드러나고, 지난해엔 버려진 부품을 빼돌려 수리한 뒤 다시 원전에 사용한 직원이 구속되기도 했다. 비리가 터질 때마다 책임을 묻고 시스템을 정비하겠다고 큰소리쳤는데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대수술을 해야 한다.
고리 원전에서 중대한 정전 사고가 났는데도 은폐하려 한 데서 보듯 근본 원인은 독점과 비밀주의에 있다. 전국의 원전을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이 독점 운영하면서 제대로 된 감시를 받지 않는 게 큰 문제다. 원자력이라는 위험물을 취급하니 더욱 투명해야 함에도, 오히려 그를 핑계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성역을 구축하고 있다. 개방형 전문가 채용을 확대하고 정보 공개 등 감시 시스템을 강화해 조직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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