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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현대그룹 눈에는 노조가 파괴대상일 뿐인가 |
현대그룹(회장 현정은)의 그룹 및 계열사 최고위급 임원들이 모여 현대증권 노조를 무력화시킬 방안을 논의한 사실이 들통났다고 한다. 윤경은 현대증권 사장 등 7명이 지난 9월26일 비밀회의를 열어 민경윤 현대증권 노조위원장을 쫓아내는 궁리를 한 대화 내용이 녹취록 형태로 공개된 것이다. 공개된 논의 내용은 너무 치졸하고 악랄해, 이들이 재계 20위권의 그룹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녹취록을 보면, 윤 사장 등은 노조를 상생과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파괴해야 할 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들은 민 위원장을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로 비난하면서 그를 쫓아낼 온갖 방법을 모의한다. 노조위원장이 바뀌면 현업에 복귀할 노조 전임자들을 회유·겁박하고, 농성을 하면 위원장을 무조건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하며, 다음 노조위원장 선거에 대비해 지난해 선거 때 패배한 후보를 회사 편으로 끌어들이는 방안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회사가 자주적인 노조 활동에 개입하는 것으로, 노동관계법이 금지하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
회사 쪽은 또 민 위원장을 개인 차원에서 괴롭혀 정신적·경제적으로 파탄시키는 방안까지 강구한다. 개인비리를 들춰내 자극한 뒤, 민 위원장이 도를 넘게 반발하면 명예훼손으로 민사소송을 건다는 것이다. 윤 사장은 특히 민사소송을 하면서 민 위원장의 아파트에 100억원의 가압류를 걸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자고 제안한다. 노조 지도부의 손발을 묶어 옴짝달싹 못하게 하려는 잔인한 수법이 아닐 수 없다.
윤 사장 등에게 노조는 그저 불필요하고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대기업 경영진조차 이처럼 낡은 노사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받기란 요원한 일이며, 기업의 올바른 성장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현대그룹은 현대증권 노조 파괴 논의를 당장 중단하고 사과해야 한다. 아울러 고용노동부와 검찰 등은 이들의 논의가 현정은 그룹 회장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 등을 밝혀내고, 노동관계법 위반 사항에 대해 엄격하게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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