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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재철 해임안 부결’ 청와대·박근혜 합작품인가 |
김재철 문화방송(MBC) 사장 해임안이 어제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에서 부결됐다. 야당 추천 이사 3명은 모두 해임안에 찬성했지만, 여당 추천 이사 6명 가운데 5명이 반대하고 1명은 기권해 결국 무산됐다. 이로써 공영방송 엠비시를 권력의 품에서 국민의 품으로 되돌리려는 우리 사회의 열망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독립성을 철저히 외면한 방문진은 이제 존재해야 할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이번 표결을 둘러싸고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양문석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이 폭로한 여권의 해임안 부결 외압 의혹이다. 양 상임위원은 방문진 표결 뒤 기자회견을 열어 “(여당 추천인) 김충일 방문진 이사에게 하금열 대통령실장과 박근혜 대선 후보의 김무성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이 ‘김재철을 지키라’는 내용의 압박성 전화를 했다”고 주장했다. 애초 해임안을 표결할 예정이었던 지난달 25일 직전에 두 사람이 김 이사에게 전화를 걸어 해임 반대 뜻을 전했다는 것이다.
양 상임위원의 주장은 김 이사의 행보를 되짚어볼 때 신빙성이 높다. 김 이사는 지난달 초 엠비시 사태를 풀기 위해 김재철 사장과 노조집행부의 동반 사퇴, 편성·편집의 공정성과 경영독립성 확보 등 4개 항을 내용으로 하는 결의안을 직접 만들어 야당 이사 3명과 자신을 포함한 여당 이사 2명의 서명을 받았다고 한다. 방문진 전체 이사 9명 중 과반이 김재철 사장 사퇴로 뜻을 모으는 데 주도적으로 나선 셈이다. 그러다 갑자기 해임 반대 쪽으로 돌아섰으니, 하금열 실장과 김무성 본부장의 전화 메시지에 영향을 받은 때문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김 이사한테서 청와대와 여당 쪽 요구로 입장을 바꾸게 됐다는 말을 직접 들었다는 방문진 야당 이사의 증언도 나오는 상황이다.
양 상임위원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이는 명백한 언론자유 침해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행위이다. 아울러 청와대와 박근혜 대선 후보가 12월 대선을 공영성과 독립성을 상실한 김재철 사장 체제로 치르기로 작심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금열 실장과 김무성 본부장이 나섰다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후보 두 사람의 의중과 떼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하 실장과 김 본부장은 김재철 사장 문제로 김충일 이사와 통화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이번 외압 의혹은 어물쩍 넘길 수 없고, 넘어가서도 안 될 사안이다. 관련 당사자들은 사실을 분명히 밝혀 국민이 진실을 알 수 있도록 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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