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자동차 연비 논란, 집단소송제 검토 계기 돼야 |
미국에서 자동차 연비 문제가 불거지자 현대·기아차는 재빨리 대응에 나섰다. 연비 측정 오류를 사과하고 인증 연비에 못미치는 만큼의 손실분을 고객들에게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미국 소비자들은 회사 쪽이 내놓은 1000억원대 보상안을 거부하고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중고차 가치 측면에서도 손해를 봤다며 8000억원가량을 물어내라고 요구했다. 이를 지켜보는 국내 소비자들은 씁쓸하다. 집단소송은 아예 불가능할뿐더러 업체나 당국의 미온적인 대응을 보면 딴 세상 이야기인 탓이다.
국내에서도 자동차 연비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 차를 몰아보니 공인 연비에 훨씬 못미친다는 불만이 많고, 미국에서 판매중인 동일 차종 모델의 표시 연비가 국내 표시 연비와 다르다는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에너지관리공단이 지난해 국내 완성차 25개 차종에 대해 연비 재측정을 한 결과 7개 차종은 공인 연비보다 높게 나왔으나 17개 차종은 낮게 나왔고 그 비율이 3%가 넘는 차종도 셋이나 됐다고 한다.
국내 연비 인증 절차는 업체 자율에 맡겨져 있는 신고제로, 에너지관리공단이 업체가 신고한 방식과 똑같은 방법으로 연비를 측정해 사후관리한다. 현대·기아차는 규정대로 연비를 측정했다고 주장하고, 당국은 5%의 오차 허용 범위를 넘지 않으면 문제없다는 식이다. 미국 당국이 소비자 불만이 접수되자 모든 차종 연비 검증에 나선 것과 대비된다. 현대·기아차가 미국에서 연비를 평균 3% 강등당한 것은 법규 위반 때문이 아니라 미국 환경보호청이 가이드라인 중에서 소비자들의 체감 연비에 가장 근접한 공인 연비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가이드라인만 충족하면 문제없다는 우리 당국의 태도는 소비자 보호라는 기본 임무를 게을리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연비 격차를 줄이기 위해 올해부터 미국 기준을 적용한 새 연비 기준을 도입했지만 국내 판매중인 차량에는 여전히 구연비 정보를 허용해 소비자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동일 차종이라도 미국 연비 기준과 국내 구연비 기준 간 차이는 20~30%에 이른다고 한다.
현대·기아차는 물론 당국은 국내 판매 전 차종의 연비 표기에 대한 조사 요청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소비자 문제 해결이 민생정치, 생활정치의 시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집단소송제도 적극 검토할 단계다. 집단소송제는 미국처럼 피해를 본 당사자 중 일부라도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 비슷한 피해를 본 소비자들 모두에게 효력이 미치는 제도다. 국민권익위원회도 최근 소액 피해자의 권리구제를 위한 집단소송제 도입을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