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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11.23 19:06 수정 : 2012.11.23 23:19

엊그제 국회 본회의에서 성범죄의 친고죄 폐지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성폭력 관련 법률안 5건이 가결됐다. 이로써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 처벌의 책임과 부담을 떠안아야 했던 비상식적 상황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여성계의 오랜 염원이 이뤄졌다는 점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크게 환영할 일이다.

성범죄의 친고죄 조항은 애초 ‘피해자 사생활과 명예 보호’가 취지였을 수 있으나, 현실에선 피해자들에게 이중 삼중의 고통만 주는 족쇄로 기능을 했다. 고소를 결정할 때까지 엄청난 중압감을 느끼고, 가해자 쪽의 합의 압력에 ‘2차 피해’까지 겪는 경우가 빈번했다. 검찰·경찰의 수사나 법원의 재판도 고소 취하 가능성 때문에 적극성을 띠기 어려웠다. 성폭력이 반사회적·반인권적 범죄가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합의로 해결될 수 있는 ‘사적 문제’라는 그릇된 인식이 퍼지게 된 이유다.

그 결과 성폭력 범죄는 신고율과 기소율 모두 낮은 수준을 보여왔다. 여성계가 추정하는 성폭력 범죄 신고율은 연간 7~10%로, 미국의 40% 등에 견줘 크게 낮다. 기소율 역시 올해 들어 8월까지 41.0%(법무부 통계)를 기록해 10년 전인 2002년의 46.5%에서 오히려 감소했다. 이번 친고죄 폐지는 성폭력 범죄의 신고율과 기소율을 크게 높여 ‘성폭력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 불벌죄 조항이 폐지된 것도 이런 기대감을 높여준다.

하지만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조항들이 국회를 함께 통과한 것에는 우려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16살 미만 대상 성범죄에만 적용되는 ‘화학적 거세’(성충동 약물치료)가 피해자의 나이에 상관없이 전면 확대됐으며, 위치추적 전자발찌 부착 대상에 강도 범죄가 추가됐다. 이런 엄벌주의는 성폭력의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가해자의 책임을 엄격하게 묻는 것은 필요한 일이나,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을 높여 성평등 의식을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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