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1.26 08:25
수정 : 2012.11.26 08:25
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이 600억원대의 회삿돈을 횡령하고도 검찰로부터 징역 4년의 가벼운 구형을 받은 이유가 드러나고 있다. 한상대 검찰총장이 서울지검 수사팀의 ‘징역 7년’ 구형 의견을 묵살하고 ‘징역 4년’ 구형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한 총장이 권한을 남용해 최 회장을 감싸고돈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검찰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한 총장은 두 차례에 걸쳐 최 회장에 대한 4년 구형을 고집했다고 한다. 애초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을 통해 7년 구형을 보고했으나 한 총장은 4년을 제시했다. 이에 수사팀이 반발하자 최 지검장이 재고를 요청했는데도 한 총장은 4년 구형을 거듭 지시했다는 것이다.
한 총장이 4년 구형에 집착한 이유는 자명하다. 법원이 최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려는 것이다. 대법원 양형기준은 횡령·배임액이 300억원 이상일 경우 기본형으로 징역 5~8년을, 감경한 형으로 징역 4~7년을 권고하고 있다. 법원 안팎에선 구형량이 5년 이상이면 통상 집행유예가 어렵지만, 4년이면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할 수 있다고 본다. 검찰 구형에 대해 “최 회장 봐주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총장의 지시는 상식에 어긋나는 권한 남용에 해당한다. 검찰청법에 ‘검찰총장은 검찰사무를 총괄하고 검찰청의 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12조)는 규정이 있지만 이런 권한이 수사팀 의견을 무시하고 형량을 제멋대로 결정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총장의 입맛대로 구형량이 정해진다면 주요 사건에서 검사들은 총장의 처분만 바라보며 수사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구조 속에서 범죄를 제대로 단죄하고 법의 신뢰를 바로 세우기란 불가능하다.
특히 한 총장은 최 회장과 고려대 동문으로, 과거에 한 달에 한두 번씩 호텔에서 테니스를 친 사이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런 특수관계라면 ‘오얏나무 아래선 갓끈도 고쳐 매지 말라’는 말을 명심하며 행동에 주의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한 총장은 정반대로 처신했다. 총장의 윤리의식이 이 정도니 일선 검사가 실명으로 검찰 게시판에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글을 올리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한 총장이 자리를 지키는 한 어떤 검찰개혁도 불가능하다. 한 총장은 ‘봐주기 구형’ 지시에 대해 사죄하고 당장 물러나는 것이 옳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