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국민 우롱하는 검찰의 ‘꼼수개혁론’ |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고, 더구나 그것을 제 손으로 하는 건 더 어렵다는 걸 실감케 하는 요즘이다. 지난 24일 검찰 내부통신망에 ‘검찰 개혁만이 살 길이다’ 등 두 편의 글을 올린 검사가 사실은 ‘개혁하는 시늉’으로 검찰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취지였다는 글을 따로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가 하면 최근 잇따른 검사회의가 상부의 권유에 따라 열리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사실이라면 꼼수도 이런 꼼수가 없다. 국민들이 기대했던 진정성 담긴 성찰과 반성은커녕 검찰의 대국민 집단사기극이라는 비판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서울남부지검 윤대해 검사는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두 차례 실명으로 글을 올려 ‘정치권력에 편파적인 수사’ ‘재벌 봐주기 수사’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한 권력’ 등이 검찰의 문제점으로 거론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시민위원회의 실질화(기소배심제 도입)’ ‘검찰의 직접수사 자제’ ‘상설특임검사제 도입’ 등을 개혁안으로 제시했다. 이때까지는 소장검사의 충정 어린 제안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진의는 그게 아니었다. 그가 대검 정책기획연구관으로 있는 동료검사에게 보내려다 실수로 언론인에게 잘못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구태정치인 뺨치는 공작에 가까운 시나리오가 담겨 있었다. 자기의 제안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별 내용이 없는데도 큰 개혁을 한 것처럼 보여진다”며 “개혁을 하는 것처럼 하면서 사실 우리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고 적어놓았다.
기소배심제는 실제로는 대부분 검사 뜻대로 관철되고, 직접수사 자제도 예외조항을 두니 현재와 달라지는 건 없으며, 상설특임검사제로 야당의 중수부 폐지와 공수처 주장도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검 지침 개정을 통해 개혁하는 시늉을 함으로써 법률 개정을 막으면 “검찰에 미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평검사회의를 열어 개혁 분위기를 띄운 다음 “총장님이 큰 결단을 하는 모양으로 가야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는다”는 훈수도 곁들였다.
검찰 내부에서 개혁을 주장하는 검사들이 모두 윤 검사와 같은 얕은수를 쓰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근 며칠 사이 검찰 내부에서 나온 개혁론 가운데 그나마 수긍할 만했던 제안마저 이처럼 진정성 없는 술수였다니 허탈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검찰청별로 열리는 평검사회의 자체가 대검의 권고에 따른 것이고 시기는 물론 안건까지 정해줬다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검찰 스스로 개혁의 길을 찾으리란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게 좋을 것 같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