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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친재벌 본색 드러낸 박근혜의 ‘줄푸세 경제’ |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그제 밤 대선후보 2차 텔레비전 토론회를 하고 경제분야에 대해 열띤 공방을 벌였다. 민생 문제는 이번 대선의 가장 큰 쟁점이어서 유권자들의 관심도 그만큼 뜨거웠다. 세 후보는 모두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면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상황 인식과 구체적인 해법에서는 첨예하게 대립할 정도로 큰 차이를 보였다.
세 후보 모두 경제민주화를 내세웠는데도 날선 공방이 벌어진 까닭은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와 거리가 먼 주장을 편 탓이다. 지난 총선 때 경제민주화를 팔아서 톡톡히 재미를 본 박 후보는 한동안 경제민주화를 강력하게 추진할 것처럼 부산을 떨었다. 하지만 지난달 최종 발표한 공약은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으로 제안한 알맹이를 빼버린 것이었다. 이후 김 위원장은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비판하며 한달 이상 당무를 거부한 바 있다.
그제 토론회에서 박 후보는 경제민주화 의지가 퇴색한 것을 넘어 재계의 대변자, 재벌의 동반자가 됐음을 거리낌 없이 보여줬다. 친재벌 본색을 드러내기에 이른 셈이다. 순환출자나 비정규직 문제 등 핵심 쟁점에서는 재벌 이익단체인 전경련의 논리를 그대로 따와 재벌을 두둔했다. 경제는 성장하는데 국민 대다수의 삶은 어려워지는 팍팍한 현실이 불러낸 절박한 과제가 경제민주화다. 우리 사회는 승자독식을 낳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열악한 복지·노동 지표가 문제라는 데 폭넓게 공감하고 있다. 재벌개혁과 복지·노동권 강화를 빼놓고 경제민주화를 말할 수 없다.
박 후보는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를 세우자는 ‘줄푸세’가 경제민주화와 같다고 한다. 세금을 줄여서 무슨 복지를 실현하며, 규제를 풀어서 어떻게 시장질서를 바로잡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중소기업과 서민, 중산층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것은 재벌에 유리한 규제 완화와 1% 부유층의 주머니만 불리는 부자감세 때문이었다. 박 후보는 이런 폐해를 시정할 생각은커녕 재벌 중심의 성장에 낙수효과라는 낡은 패러다임으로 회귀한 것이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대기업더러 순환출자 해소에 수조원을 쓰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박 후보의 발언은 귀를 의심케 한다. 재벌들이 순환출자를 통해 부당하게 쌓은 과도한 기득권이 문제인데, 이를 인정해주고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겠다는 것은 재벌개혁 의지가 전혀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과 같다. 순환출자는 경제력 집중과 계열 확장의 수단으로 악용돼 왔으며 다른 주주들의 의결권을 침해하는 문제가 상존한다. 박 후보는 재벌의 부당행위를 막겠다고 하지만, 그 근저에 경제력 집중과 지배권 확장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런 약속 또한 제대로 지켜질지 의심스럽다.
청년은 희망을 잃고, 중장년층은 고용불안을 겪고, 노인들은 빈곤에 시달리는 현실은 복지와 노동 환경이 열악한 탓이다. 자영업에 과잉인력이 몰린 것도 성장지상주의를 추구한 결과 복지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아 사회서비스 일자리가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정건전성을 뛰어넘는 복지 포퓰리즘은 두고두고 후세에 짐이 된다는 박 후보의 얄팍한 복지 철학으론 삶의 조건을 바꿀 수 없다. “부자에게 돈 쓰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서민에게 돈 쓰는 건 왜 비용이라 하는지 모르겠다”는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의 말을 들어야 할 사람은 박 후보다. 박 후보의 미래는 이명박 정부의 연장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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