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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노동자 투표권, 기업이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
18대 대통령 선거가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나라의 미래를 가를 선거에 직업과 지역, 출신에 관계없이 국민이라면 누구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참정권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 권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원칙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백화점과 마트, 택배, 건설현장, 서비스센터, 병원, 중소 제조업체 등은 물론이고, 일부 대기업에서조차 노동자들은 근무하느라 투표가 ‘그림의 떡’일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비정규직의 투표 참여가 어렵다. 민주노총은 투표시간 때문에 투표를 포기하는 유권자가 500만~6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런 노동자들에게 “의지가 부족하다”거나 “부지런하면 투표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건 가슴에 못을 박는 행위나 다름없다.
현행법에 노동자 투표권을 보장하는 장치들이 있기는 하다. 공직선거법은 ‘공무원·학생 또는 다른 사람에게 고용된 자가 선거인명부를 열람하거나 투표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간은 보장되어야 하며, 이를 휴무 또는 휴업으로 보지 아니한다’(제6조)고 규정하고 있다. 또 근로기준법에는 노동자가 투표시간을 청구하면 사용자가 거부하지 못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처벌하도록 돼 있다. 관공서의 경우 대통령령인 ‘관공서의 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라 선거일이 공휴일이다.
그러나 일반 기업에는 강제적인 공휴일 규정이 없다. 단체협약 등을 통해 휴일로 정해지지 않은 이상 선거일에도 정상 출근을 해야 한다. 이런 제도적 환경 아래서 노동자들이 회사의 따가운 눈총이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투표시간을 청구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낮아지는 투표율과 투표에 불참하는 유권자를 나무라기 전에 노동자 투표권을 보장할 실질적 조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기업들이 투표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지 못할 경우 개점시간 늦추기, 영업시간 축소, 출퇴근시간 조정 등의 방안을 통해 투표시간을 확보해주어야 한다.
다행히 긍정적인 변화의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이번 대선에서 처음으로 점포 직영사원에 한해 출근시간 자율제를 도입했다. 투표를 한 뒤 원하는 시간에 출근하도록 허용한 것이다. 파견사원의 경우에도 투표가 가능하도록 교대제 도입 등을 협력사 쪽에 요청했다고 한다. 이런 변화가 여러 기업으로 확산돼 노동자가 편하게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중앙선관위와 고용노동부도 기업들에 투표시간 보장을 적극 권유하고, 투표시간을 보장하지 않았을 경우엔 단호하게 처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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