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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준비된 여성대통령’ 주장이 낯뜨거운 이유 |
엊그제 김지하씨는 박근혜 후보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여성이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아보고, 돈을 벌어보지 않아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그렇다. 여성은 여성이라는 것만으로 디엔에이에 모성이 있다.” 여성의 사회적 현실에 무지했고 무관심했던 박 후보에게는 달콤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럴까.
그날, 평생 앞장서 분투해온 여성 100인은 이렇게 물었다. “여성들이 일터에서 쫓겨나 거리에서 울부짖을 때, 반여성적 제도와 법률을 바꾸기 위해 몸을 던졌을 때, 60%에 이르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고통스러워할 때,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실천을 했는가?” 노예노동에 맞서다가 똥물을 뒤집어쓰고, 경찰의 살인진압 속에 동료를 잃었던 유신 시절 여성노동자들, 한평생 성차별 등 온갖 차별을 극복하는 데 헌신했던 이들이다. 이들에게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박 후보의 유사 상표 ‘여성대통령’으로 말미암은 ‘여성성 의미’의 훼손과 왜곡이었다.
더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마는, 그동안 박 후보가 외면했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건 우리 역사가 당했던 가장 큰 치욕이기도 하려니와, 역사적으로 여성 수난사의 정점을 이루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사회적 모순이 어떻게 약자인 여성에게 전가되는지를 이보다 더 명료하게 드러내는 본보기는 없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그가 언급한 것은 지난 9월 외신기자회견이 고작이었다. 그것도 “역사와의 화해라는 것은 한없이 기다릴 수 없다. 지금이 역사와 화해할 마지막 기회 아닌가…”라며 ‘일본의 현명한 지도자들’에게 화해를 재촉했다.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결연히 요구해도 시원찮을 판에 화해라니! 그게 박 후보의 인식 전부였다. 국가관이나 역사의식을 떠나, 여성의 수난에 대해 애당초 관심이 없었다.
지난 7월 도쿄 신주쿠의 니콘살롱에서 열린 안세홍 작가의 ‘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위안부 할머니들’ 사진전에는, 박대임 할머니(18살에 납치), 배삼엽 할머니(13살), 이수단 할머니(19살), 박서운 할머니(20살) 등의 한 많은 세월이 담겼다. 이들이 먼저 끌려간 곳은 만주였다. 박정희가 배속돼 있던 관동군 관할 지역이었다. 그래서 외면했을까.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위안부 할머니와 이를 통해 드러난 여성 수난사를 말하지 않고 돌아보지 않으면서 여성대통령을 내세우는 건 사기나 다름없다. 김지하씨와 박 후보가 회동한 전날 김복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1092차 수요집회가 열렸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저 여성대통령을 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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