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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희망과 열정 담은 소중한 한 표 행사하자 |
거창하게 시대정신이라는 말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지금 이 시대 서민들의 가슴에 담긴 소박하면서도 절절한 희망은 대동소이하다.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사회, 기득권층의 특권을 없애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낡은 정치 대신 새로운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사회, 대립과 갈등 대신 화해와 소통의 기운이 넘쳐나는 공동체에 대한 꿈이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종종 분노와 열정에서 비롯된다. 선거는 바로 현실에 대한 분노, 미래에 대한 열정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시하는 행위다. 이제 이런 분노와 열정을 담은 한 표를 행사할 제18대 대통령 선거날이 밝았다. 하지만 분노는 맹목적이어서는 안 되고, 열정에는 냉철한 분별심이 수반돼야 한다.
우선, 이번 선거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전진이냐 후퇴냐를 가름하는 중대한 분수령이다. 한때 국제적인 찬탄의 대상이었다가 이명박 정권 들어 조롱의 대상으로까지 전락한 민주주의와 인권을 복원하는 일은 다음 정권의 최우선적 과제다. 이 과제는 국가지도자의 철학과 사상, 지나온 행적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정치세력의 성격에서도 행로가 확연히 갈리게 돼 있다. 유신시대에서 이명박 정권까지를 아우르는 보수 대연합 세력 대 민주화운동의 전통을 이어온 진보개혁세력의 한판 승부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이 중요한 이유다.
둘째, 민생과 안보의 증진이다. 전통적으로 민생과 안보는 보수정치세력의 전유물처럼 사용돼온 단어다. 이번 선거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이 대목은 좀더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민생·안보 성적이 낙제점이었음은 ‘집권여당’인 새누리당 스스로 인정한다. 청년은 희망을 잃고, 중장년층은 고용불안, 노인들은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안보는 수시로 구멍이 뚫렸다. 그 낙제점의 주인공들이 다시 외치는 민생과 안보의 약속이 얼마나 신뢰성이 있는지 잘 헤아려볼 일이다.
한걸음 나아가 민생은 단순히 일자리 늘리기나 소득 증대에 그치지 않는다. 시대의 화두로 등장한 경제민주화와 복지야말로 민생의 핵심적 사안이다. 안보 역시 군사력으로 영토를 지키는 차원을 넘어서 한반도의 평화 정착과 남북관계 개선까지를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접근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경제민주화 공약이나 한반도 냉전 해소 약속의 진정성을 살펴보면 후보 간에 분명히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셋째, 통합과 소통 또한 우리 시대가 풀어야 할 중요한 화두다. 이념과 계층, 지역으로 갈가리 찢긴 참담한 현실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포용과 화해, 융합은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하지만 통합은 결코 어느 한 세력이나 가치를 중심으로 국민이 뭉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특정 집단을 배격하고 꼬리표를 붙이고, 색깔을 덧씌우면서 화해를 말하는 것 역시 위선이다. 어떤 지도자가 더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열린 귀를 갖고 있는지도 매우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정치의 실현이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민심은 ‘안철수 현상’으로 대변되는 정치쇄신, 정당개혁에 대한 끓어오르는 욕구다. 안철수 전 후보 역시 단순히 새정치의 상징적 아이콘에 머물지 않고 유세활동을 통해 새정치 실현을 위한 정권교체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사실 새로운 정치의 실현은 현실적으로 결코 쉽지 않은 과제로 보인다. 다만 누가 집권했을 때 새정치를 향한 새로운 정치지형이 펼쳐질 가능성이 큰지는 잘 판가름해볼 필요가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선거 참여다. 아무리 가슴에 분노와 열정을 담고 있어도 투표라는 구체적인 행위로 이어지지 않으면 칼집 속에 들어 있는 칼일 뿐이다. “투표하지 않는 사람은 정부가 잘못한 일에 불평할 권리가 없다”는 경구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아침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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