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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진보, 다시 새롭고 뜨겁게 시작하라 |
우리나라 선거 경기장은 원천적으로 한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뿌리 깊은 보수 우위 구도에 인구 구성비의 고령화까지 겹치면서 보수화 경향은 더욱 심각해졌다. 야권에는 ‘천형’인 영·호남의 현격한 인구 격차에다 여론 시장을 장악한 보수언론들은 수시로 편파적인 호루라기를 불어댄다. 여기에 선거 전략의 혼선, 프레임 경쟁의 실패까지 더해졌으니 야권의 패배는 당연한 귀결이다.
대선이 끝난 뒤 진보개혁 진영이 느끼는 심경이 단순한 실망감 차원을 넘어 아득한 절망감에 가까운 것은 이런 터널을 빠져나올 방안이 쉽게 보이지 않는 탓도 크다. 하지만 마냥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아니, 할 수밖에 없다. 모든 불리한 여건을 ‘고정 상수’로 안고 그것을 뛰어넘을 방안을 짜내야 한다.
첫째, 신뢰다. 진보진영은 나름대로 노력했음에도 끝내 유권자들에게 안정감과 믿음을 주는 데 실패했다. ‘성급하고 무능한 진보’가 아닌 ‘사려깊고 유능한 진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지 못했다. 야당이 수도권에서 부진했던 가장 큰 원인도 따지고 보면 안보 문제를 비롯한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불신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물론 보수진영의 이미지 덮어씌우기는 집요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벽을 뛰어넘어 유권자들에게 믿음을 주는 일은 진보진영이 기필코 해결해야 할 숙제다. 신뢰 구축은 선거 승패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도표의 행방과도 가장 밀접히 관련돼 있는 사안이다.
둘째, 야권의 근본적 대수술을 통한 정치개혁과 정당개혁이다. 이번 대선에서 야권 후보 단일화는 빛과 그늘을 동시에 안겼다. 진보의 외연 확대 가능성과 함께 급조된 ‘임시 가옥’의 한계점도 여실히 보여줬다. 이제 이런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아닌 항구적인 틀 짜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애초 문재인 후보가 구상했던 ‘새로운 국민정당’의 필요성은 오히려 더욱 절실해졌다고도 할 수 있다. 기성정치인들의 독과점 구조 타파를 비롯한 낡은 정당 구조의 혁신 역시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셋째, 인물을 키우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는 데 곱절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역량과 경험을 갖춘 후보의 존재는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다. 준비된 대선 후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혜성처럼 나타나는 구세주를 바라기에 앞서 지금부터 긴 안목으로 사람을 키워나가야 한다. 또한 이번 대선에서도 나타났지만 보수가 진보 쪽 정책까지 끌어다 쓰는 상황에서 차별성 있고 유권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책 개발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이제 민주통합당은 큰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다. 벌써 선거패배 책임론, 친노 후퇴론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선거의 후폭풍이 단순히 특정 세력의 축출이나 당권 각축전, 권력투쟁 따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창조적 진통으로 승화하지 못한 진흙탕 싸움을 해서는 진보에 미래는 없다. 5년 뒤 또다시 똑같은 한탄을 되풀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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