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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진정성 묻어나는 인사라야 감동한다 |
역대 어느 정권이고 출범 초기 인재의 고른 기용을 약속하지 않은 정권은 없었다. 예외가 있다면 이명박 정부 정도일 것이다. 애초부터 인사의 공정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이 시작해 5년 내내 보은 인사, 회전문 인사, 돌려막기 인사로 일관했다. 이명박 정부는 매우 특별한 경우에 속하지만 다른 정권들의 인사 성적표도 썩 좋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애초의 의지는 퇴색하고 ‘그 나물에 그 밥’으로 흘렀던 것이 과거의 경험이다.
박근혜 당선인 역시 선거가 끝난 뒤 제일성으로 내놓은 것이 탕평 인사다. “지난 반세기 동안 분열과 갈등의 고리를 화해와 대탕평책으로 끊겠다”며 “모든 지역과 성별, 세대의 인재를 고루 기용해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탕평 인사는 박 당선인이 선거기간 내내 강조해온 국민과의 약속이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라는 반면교사까지 있으니 좋은 인사에 대한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인사에는 감동이 수반돼야 한다. 정치적 반대편에 선 사람들의 마음까지 움직이는 따뜻한 울림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감동과 울림이 있는 인사란 결코 쉽지 않다. 단순한 구색 맞추기, 형식적 안배, 산술적 균형 유지 정도로는 감동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인사에 진심이 묻어나야 한다. 나라를 위해 백방으로 인재들을 찾아 헤맨 인사권자의 노고가 전해올 때 국민은 비로소 감동한다.
당대의 문제는 당대의 인재들에 의해 해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재의 풀은 넓을수록 좋다. 낡은 인물 창고를 뒤져 먼지를 털어 쓰는 식의 인사도, 개국공신들에 대한 논공행상도 금물이다. 인사 문제에 관한 한 ‘결초보은’보다는 오히려 ‘토사구팽’이 낫다.
지역 안배도 마찬가지다. 벌써 인수위원장에 호남 출신 인사가 기용될 것이라는 말이 무성하다. 물론 영남 독식 등에 비하면 훨씬 나은 발상이다. 하지만 어떤 특정인이 곧 그 지역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그 지역 주민들의 신뢰가 담보돼 있을 때만 대표성이 살아난다. 사람을 ‘사들여’ 그 지역의 민심을 얻겠다는 접근법으로는 감동이 피어나지 않는다.
조선시대 정조는 자신의 침실에 ‘탕탕평평실’이라는 편액을 걸어놓고 아침저녁으로 탕평의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인사에서 붕당을 가르고 양반·서얼 따위를 따지다 존망의 위기에 빠졌던 조선 말기를 연상케 할 정도다. 이런 망국적 현실을 해결할 책임은 이제 박 당선인의 몫이 됐다. 이번 대선에서 그를 반대했던 국민 사이에서도 ‘대통령 잘 뽑았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는 인사를 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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