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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죽음의 번호표, 그 절망의 멍에를 누가 벗길까 |
어제도, 그제도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다. 대통령선거 후 3명째다. 남은 자는 참괴할 뿐이다. 더 끔찍한 것은 얼마나 더 많은 이들이 그 뒤를 따를지 모른다는 것이다. 한때 이들에게도 희망이었을 2012년 12월19일, 그러나 지금은 승자의 환호 뒤편에서 죽음의 행진이 이어지는 계절이 되었다. 무엇으로 그 발길을 막을까.
정신과 의사 정혜신 박사는 최근 텔레비전 찬조연설에서, ‘죽음의 번호표’를 든 이들에 대해 말했다. 이미 22명이 자살한 쌍용차의 경우, 그가 알고 있는 자살 시도만 해도 두세 건 더 있었다. 자살이야 고독의 심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최종적 선택 앞에서 숨죽여 떨고 있는 이들은 얼마나 더 많을까. 게다가 그것이 어디 쌍용차뿐이랴. 이미 현대자동차, 유성기업 등 수많은 기업에서 해고되거나 해고의 위협 속에서 떠는 노동자는 열 배 스무 배 더 많다. 모두 무거운 번호표를 쥔 이들이다.
대통령선거 결과가 발표된 이튿날 세상을 뜬 한진중공업 노조 간부 최강서씨, 그다음 날 유명을 달리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해고자 이운남씨는 번호가 빨랐을 뿐이었다. 복직은 했지만, 유일한 의지처 민주노조가 파괴되고 158억원 손해배상소송의 악령에 짓눌린 최씨였고, 크레인 농성을 벌이다 구속되고 폭력진압으로 외상후 스트레스성 장애를 앓던 이씨였다. 이들에게 선거 결과는, 그렇게 염원했던 복직, 민주노조 회복, 살인적 손배소 해소의 꿈이 사라진 것이었다. 최씨는 유서에서 절망적인 어투로 ‘박근혜 대통령 5년을 또…’라고 써놓았다. 지난 대통령선거 직후엔 한진중 전 노조위원장 김주익씨가 그런 선택을 했다.
그렇게 이번 선거를 제 목숨처럼 생각했던 이들은 많았다. 그들의 마지막 희망을 붙들고 있는 손은 이제 떨고 있다. 붙잡을 힘도 없다. 그들의 손을 붙잡을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다. 자신에 대한 노동자의 절망적 시선이 기분 나쁠 수 있겠지만, 그것이 바로 현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박 당선인이 장담한 대통합의 전제조건이다.
비록 구체적 내용에 대한 언급은 피했지만, 그는 불공정, 부정의에 시달리는 이들을 부축하겠다는 약속만은 되풀이했다. 경제민주화 공약이나, ‘100%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행복한 나라’,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등의 구호가 그것이다. 눈속임은 아닐 것이다.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벼랑에 선 이들이 희망을 갖고, 사회적 약자가 정당한 대우를 받고, 가난의 대물림이 끊어지면 된다. 그 시작은 죽음의 번호표를 쥔 이들의 손을 잡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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