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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시대의 절망이 다시 불러낸 희망버스 |
엊그제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앞에서 ‘다시 희망 만들기’ 행사가 벌어졌다. 전국 각지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찾아온 2000여명의 시민들은 노동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투쟁, 투쟁을 통한 희망 만들기를 다짐했다. 1년2개월 전인 2011년 11월19일 마지막 희망버스 행사에서 더는 절망을 말하지 않고, 애써 희망을 찾아나서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오히려 자본의 억압은 더 강화되고, 노동의 좌절은 더 깊어졌다. 노동자들은 끝없이 생사의 갈림길로 밀려났다. 희망버스를 불러낸 것은 앞을 가늠하기 힘든 시대의 절망이었다.
희망버스는 울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해고자 최병승·천의봉씨가 82일째 농성중인 송전탑 농성장에 중간 기착했다. 일전에 목숨을 끊은 이운남씨는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해고자였다. 현대차에서 사법부도 그 정당성을 인정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싸우다 해고된 사람은 지금까지 1500명을 넘는다. 이씨가 걸었을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다. 절망, 좌절을 말하기조차 사치스러울 정도로 상황은 절박하다. 하지만 현대차는 인력 자연감소분만큼만 비정규직에서 신규채용하는 방식으로 노동자 분열만 추진하려 한다.
한진중공업은 158억원 손해배상·가압류 소송으로 벼랑 끝에 선 최강서씨의 등을 떠밀었지만, 그건 한진중만의 행태는 아니다. 이미 자본은 노동조합을 파괴하고 노동자를 길들이기 위해 천문학적 규모의 손배소를 제기해왔다. 쌍용차 사태와 관련해 회사와 정부, 보험사 등이 해고노동자에게 제기한 손배소, 구상금 및 가압류 청구소송 청구액은 무려 430억9000만원에 이른다. 청구는 노조원 130여명에게 집중됐으니, 해고자와 그 가족의 잇따른 죽음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용역깡패를 동원해 노조원을 무차별 폭행하고, 노조를 파괴한 유성기업, 만도 등의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사쪽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쌍용차 해고자에겐 손배소 등을 제기했으니, 해고자의 죽음에 일조했다.
무엇보다 절망스러운 것은 자본의 염치, 정권의 양식에 기대서는 바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의 확인이다. 309일 동안의 크레인 농성 등으로 해고자 복직이 이뤄졌지만, 한진중 사쪽은 여전히 민주노조를 파괴하고, 사업 철수에 골몰한다. 대법원의 거듭된 판결에도 현대차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용역깡패의 폭력과 노조 파괴에도 처벌받은 기업주는 없다. 그 절망의 정수리에서 다시 고통의 연대가 이루어진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싸우자’ 혹은 ‘투쟁만이 희망’이라는 절규는 사실 ‘함께 살자’는 간절한 호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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