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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긴급조치 재심에 대한 검찰의 이중잣대 |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는 지난 4일 유신시절인 1974년 긴급조치 4호 위반 혐의 등으로 사형 판결을 받았던 시인 김지하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무죄 판결에 대해 항소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으나, 결국 항소를 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이 사건의 재심 결정이 내려졌을 때도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검찰은 그동안 긴급조치 재심 사건에 대해 사사건건 항소 또는 항고를 하면서 피해자 명예회복과 손해배상의 발목을 잡아왔다. 최근에도 서울형사지법이 긴급조치 9호 위반 사건 4건에 대해 재심 결정을 내리자 서울중앙지검은 즉시항고를 했다. 법원은 긴급조치 9호가 위헌임을 조목조목 설명하며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으나 검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긴급조치 위반 사건 재심 문제에 대한 검찰의 태도를 보면 참으로 뻔뻔하고 정치적이다. 검찰은 과거 ‘유신 검찰’이 정권의 주구 노릇을 하면서 억울한 피해자들을 양산한 데 대해 일말의 양심의 가책이나 뉘우침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 검찰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데 발 벗고 나섰다. 여기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정치행보와 맞물리면서 검찰의 행태는 더욱 낯뜨거운 양상을 보여왔다.
검찰의 유신헌법 옹호는 지난해 6월 긴급조치 4호 위반 사건 재심이 무죄로 결론 난 뒤 낸 항소이유서에서 극명히 나타난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박아무개 검사는 항소이유서를 통해 “유신헌법은 정당한 절차를 거쳐 제정되었고, 유신체제 철폐를 요구하는 학생들에게 긴급조치 위반과 내란예비음모죄로 중형을 선고한 비상군법회의 판결은 옳다”고 강변했다. 검찰의 정신상태가 결코 정상이 아님을 보여주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김지하 시인 재심 사건에 대한 검찰의 태도는 기존의 흐름과는 확연히 다르다. 김 시인이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지지 선언을 하고, 박 당선인이 후보 시절 직접 김 시인을 찾아가 만나는 등 두 사람의 관계는 매우 밀접해졌다. 검찰의 항소 여부 등을 최종적으로 지켜봐야 하겠지만 검찰은 이번에도 권력의 눈치를 민감히 살필 것이다.
검찰은 제발 염치를 찾기 바란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을 직시했으면 한다. 유신시절 긴급조치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박근혜 당선인마저 ‘긴급조치 보상법’을 발의할 정도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검찰은 언제까지 자신들의 좁은 우물에 갇혀서 과거의 잘못을 정당화하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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