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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현대차, ‘최병승 정규직 전환’ 꼼수여선 안 된다 |
현대자동차가 엊그제 80일 넘게 송전철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최병승씨에게 정규직 발령을 냈다. 지난해 2월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지 11개월 만의 일이다. 최씨가 하청업체에서 해고돼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낸 2005년 2월부터 계산하면 무려 8년 만에 얻어낸 소중한 승리다.
하지만 최씨는 회사의 방침대로 공장에 돌아갈 수는 없다고 밝혔다고 한다. 지금 혼자 정규직 전환을 받아들이면, 수년에 걸친 소송 끝에 불법파견을 인정받은 자신의 사례가 7700여명(노조 추산)의 비정규직 동료들에게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최씨가 8년에 걸친 투쟁의 성과와 고용안정의 ‘유혹’을 뒤로하고 철탑에 남기로 한 것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열망과 높은 노동자 연대의식 때문이겠지만, 그렇게 결심하기까지 그가 얼마나 절절하게 고민했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최씨가 선뜻 농성을 풀고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싼 노사 교섭이 아무런 진전을 거두지 못한데다, 회사 쪽 결정에 미심쩍은 대목이 적지 않은 탓이다. 현대차 정규직·비정규직 노조가 회사와 벌이고 있는 특별교섭은 지난달 말부터 중단 상태이고, 그사이 회사 쪽은 사내하청 노동자를 대상으로 420명의 신규채용 공고를 냈다. 회사 쪽이 불법파견 문제에서 강경 자세로 돌아섰다고 해석될 만하다. 울산지법이 어제 송전철탑 농성장의 천막 등 시설물에 대한 강제철거에 나선 것도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회사 쪽은 최씨가 불응할 경우 징계·해고 절차를 밟을 계획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는 상태다. 비정규직 노조의 주장처럼 다른 꿍꿍이속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이번 발령이 농성 해제를 강제하려는 압박이자 최씨를 또다시 해고하기 위한 수순 밟기라면 꼼수 중의 꼼수다.
여러 차례 강조했거니와, 현대차 비정규직 문제의 올바른 해법은 회사 쪽이 불법파견을 먼저 인정하고 노조와 정규직화 방안을 협의하는 것이다. 이미 고용노동부는 2004년에 현대차 생산공장과 하청업체를 상대로 일제조사를 벌인 뒤 9234개의 공정에서 불법파견이 있었다고 판정했다. 그런데도 회사 쪽은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최씨 한 사람만 불법파견이라고 고집하고 있다. 현대차가 성의있는 자세로 전환해 특별교섭이 이뤄지고, 전향적인 합의가 도출돼 최씨가 흔쾌하게 철탑에서 내려오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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