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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폭넓은 의견수렴으로 ‘밀봉 개편’ 보완해야 |
정부조직 개편은 우리나라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일종의 통과의례와 같다. 새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구현하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조정한다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정부조직에 손을 대 왔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역시 예외가 아니다. 5년 전 이명박 대통령이 해놓은 개편 내용을 대부분 원점으로 돌리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엊그제 발표한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한 여론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인 듯하다. 하지만 엄밀히 들여다보면 이번 정부조직 개편 역시 과거의 잘못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첫째, 기존 정부조직 편제의 문제점에 대한 체계적이고 치밀한 진단이 생략돼 있다. 대표적인 예가 외교통상부의 통상 기능을 지식경제부로 옮기는 것이다. 통상 기능을 어디에 두느냐를 놓고는 15년 전에도 치열한 토론이 있었다. 지금의 편제는 그 결과물이다. 물론 지금의 체제에 문제점이 있다면 당연히 고쳐야 한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현 체제의 문제점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와 진단이 선행돼야 하는데 이에 대한 설명이 없다. 단지 “박근혜 당선인이 산업구조를 잘 아는 부서에서 통상을 담당하는 것이 국익 측면에서 낫다는 판단을 오래전부터 해온 것으로 안다”는 비공식적 설명이 여권 안에서 흘러나올 뿐이다. 당선인의 뜻을 좇아가는 데 급급한 주먹구구식 조직개편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둘째, 지나친 비밀주의다. 이해당사자들의 반발과 로비 등을 막기 위해 개편 작업을 비밀리에 추진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고려해도 이번 조직개편 작업은 너무 밀실에서 이뤄졌다. ‘깜깜이 개편’ ‘밀봉 개편’이라는 말이 나오는 건 이 때문이다. 당사자인 공무원들에 대해서도 ‘잔말하지 말고 따르라’는 식이다. 힘의 논리로 밀어붙이는 조직개편은 더 큰 부작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셋째, 사전 공론화 과정이 없다 보니 거꾸로 가는 조직개편도 나타났다. 대통령 직속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위상을 격하시켜 미래창조과학부 밑에 집어넣은 것이 대표적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을 더욱 강화해도 모자랄 판에 시대착오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의 정부조직 개편 역사를 보면 투입된 비용과 희생에 비해 성과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는 평가가 많다. 박 당선인과 인수위원회도 이런 사실을 직시하고 조직개편에 더욱 겸허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한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해 반영하려는 열린 자세를 갖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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