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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민 알 권리 부정하는 ‘정수장학회 보도’ 기소 |
검찰이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진숙 문화방송 기획홍보본부장 등의 대화 내용을 보도한 최성진 한겨레 기자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어제 불구속 기소했다. 최 이사장과 통화하다 대화가 끝났는데도 휴대폰 녹음기능을 이용해 대화 내용을 녹음한 뒤 이를 보도한 것이 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다.
그러나 보도 경위와 내용에 비춰 보면 검찰의 이번 기소는 정당한 언론 활동에 재갈을 물려 결과적으로 국민의 알 권리를 제약할 뿐 아니라 법리적으로도 부당한 조처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대선을 코앞에 두고 특정 후보를 위해 장학회 지분을 매각하려 한 최 이사장 등은 무혐의 처분해놓고, 이런 밀실 음모를 폭로한 기자만 기소한 것은 형평성을 잃은 정도를 넘어 적반하장이라고 할 만하다. 검찰이 이 사건과 무관할 수 없는 박근혜 당선인의 눈치를 본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런 점에서 전국언론노조가 어제 “정치 검찰의 작태를 규탄한다”며 강도 높은 성명을 낸 것은 당연한 반응이라고 할 것이다.
한겨레는 최 이사장과 이 본부장의 대화를 통해 이들의 정수장학회 지분 매각 시도는 다가올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이를 국민에게 알리는 건 언론으로서 당연한 의무라고 판단했다. 전국언론노조와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단체는 물론 언론학자 200여명이 회원으로 있는 미디어공공성포럼이 한겨레 보도에 대해 훌륭한 기사라며 특별상과 언론상 본상 등을 시상한 것은 최 기자의 취재와 보도가 얼마나 정당하고 의미 있는 공익적 행위였는지를 잘 말해준다.
검찰의 주장과 달리 법리적으로 따져봐도, 한겨레의 보도는 이른바 ‘엑스파일 사건’ 당시 대법원 판례의 다수설과 소수설이 요구했던 요건을 모두 충족시킨 형법상 정당행위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 정수장학회 매각 여부는 대선을 앞두고 전 국민의 초미의 관심사였을 뿐 아니라, 이 보도를 통해 얻게 된 ‘공익’ 즉 국민의 알 권리는, 대화록 공개로 침해된 최 이사장 등의 ‘사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 통신비밀보호법 자체가 애초 정보기관 등이 전화 ‘통화’ 등을 불법 도청하는 걸 막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언론이 취재 목적으로 단순히 ‘대화’를 녹음한 행위, 그것도 통화의 연장으로 녹음하게 된 행위까지 처벌하는 건 논란의 소지가 크다. 순수한 ‘대화’의 녹음을 금지한 이 법 14조 1항에 대해 처벌규정이 없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법리적 타당성도 형평성도 상실한 검찰의 조처가 법원에서라도 바로잡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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