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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권의 교과서 수정권, 당선인 입장은 무언가 |
이명박 정부가 마침내 교과서를 정권 멋대로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정권 출범과 함께 역사 교과서부터 뜯어고쳤던 이 정권이 임기 종료를 불과 한 달 앞두고 학문과 교육의 정권 예속을 법제화하려 하는 것이다. 이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짓밟는 것으로, 현대사 논쟁의 진원인 박근혜 차기 정부에 대한 과도한 충성심의 발로로 읽힌다.
현행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교과서 수정권은 있다. 하지만 헌법이 정한 교육의 중립성을 법률도 아닌 시행령으로 제한하는 것이기에 위헌 논란은 피할 수 없다. 이 정권은 2008년 처음으로 근현대사 교과서에 이 명령을 발동해 시비를 자초했다. 상위법에 이를 명시하겠다는 것도 사실 이런 위헌 시비에서 벗어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 정부는 2010년 비슷한 법안을 제출했지만, 위헌 소지 때문에 상정도 못하고 폐기됐다. 지난해에도 수정 요청권을 담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요청 사유가 너무 포괄적이어서 역시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스스로 거둬들였다. 이 정권과 이주호 장관은 위헌 소지에서 벗어나 교육을 정치권력에 예속시키는 데 필사적이었던 셈이다.
이번 입법예고안은 이전의 다른 어떤 안보다 더 정권의 권한을 강화시켰다. 겉으로는 수정 요청권이지만, 이를 거부할 경우 검인정 합격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수정명령권과 다름없게 했다. 게다가 보완했다는 발동 요건이란 게 ‘교육적 타당성’, ‘학문적 정확성’, ‘필요한 경우’ 등 장관 멋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어서 정권에 사실상 전권을 위임했다. 일본의 경우 수정 요청권은 있지만 오탈자나 통계 오류 등 명백한 잘못에 발동할 수 있도록 국한돼 있다. 게다가 장관의 감수 권한까지 포함시켰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국사편찬위원회 등 전문가 집단이 맡고 있는 검정기구를 통과한 검인정 교과서를 정권이 다시 한번 검열하겠다는 것이다. 학문의 자유, 교육의 중립성은 고사하고 학계의 전문성과 자존심마저 부정하고 비웃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다음달이면 퇴장하는 정권의 이런 시도는 박 당선인을 의식한 결과로밖에 볼 수 없다. 유신체제의 퍼스트레이디였던 박 당선인에게 근현대사를 입맛대로 수정할 재량권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신체제로 되돌아갈 수 없는 이상, 그것은 차기 정부에 부담만 될 뿐이다. 입법도 시작은 이 정권이 했지만 처리는 결국 차기 정부의 몫이다. 박 당선인이 태도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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