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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1.28 19:16 수정 : 2013.01.28 19:16

세계 최고의 독립영화 축제 선댄스영화제에서 <지슬>이 심사위원 대상(해외극영화부문)을 받았다. 지난해 <피에타>가 베네치아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그 전해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달팽이의 별>이 장편부문 대상을 받은 데 이은 낭보다. ‘지슬’은 제주의 문화예술인과 누리꾼들의 쌈짓돈으로 제작한 것이어서 더욱 값지다. 연평균 1000만원 안팎의,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소득으로 살아가는 영화인들의 열정이 놀랍기만 하다.

특히 ‘지슬’은 제주 4·3항쟁 속에서 무고하게 죽임을 당한 민간인 희생자들의 비극을 소재로 했다. 그 책임의 한 당사자인 미국 본토에서 그 의미와 가치를 인정한 것이니 수상의 의미는 남다르다. 영화가 “해안선 5㎞ 밖 주민들은 폭도로 규정하고 모두 학살하라”는 미군정의 소개령과 함께 시작하듯이, 4·3 학살의 초기 과정을 주도한 건 미군정이었다. 소개령 이후 중산간 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초토화 작전이 벌어져 마을의 95%가 불에 타고, 주민 2만여명은 산으로 쫓겨가 본의 아니게 ‘산사람’이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한 동굴에 무작정 피신했다가 희생당한 주민의 실화가 영화의 줄거리다.

영화제 쪽은 영화에 대해 “전쟁의 불합리성을 그린 영화는 많지만, 이렇게 절묘한 디테일로 그린 작품은 드물다. 흑백 영상은 인물의 성격뿐 아니라 향토의 결까지 담아냈다”고 평가했다.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영상과 느리고 긴 화면이 일으키는 슬픔’을 찬탄하는 평가도 있었다. 이런 경이로운 디테일과 영상미는 결국 내용이 갖는 지독한 비극성에서 배어나온 것일 터이다. 오멸 감독은 그것을 “영혼들의 슬픔이 하늘에 닿은 것 같다”는 말로 표현했다. 미군정에 대한 비판 여부와 관계없이 이 작품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을 차지한 까닭이기도 할 것이다.

4·3 항쟁은 해방 후 민군정의 정책 실패와 식량난, 친일파 중용과 민심 이반, 군경 및 극우단체의 횡포가 자극한 민중의 저항에서 비롯됐다. 미군정은 초기 현지 군지휘관의 대화와 협상 의견을 묵살하고, 친일 부역자였던 군경 수뇌부와 함께 강경진압을 밀어붙였다. 이명박 정권의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이영조)이 그랬던 것처럼, 틈만 나면 공산세력이 주도한 폭동이라고 매도하는 이들은 바로 그들의 후예다. 치부를 가리기 위한 안간힘이지만, 미국의 대표 영화제가 그 비극성에 공감했듯이 이제는 그럴 때가 지났다. 영화 속 주민들이 희망의 상징인 지슬(감자)을 나누며 하던 돼지 걱정, 장가 걱정 따위의 삶이 진득한 이야기에 귀기울이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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