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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밀봉 인사’ 반성 않고 제도만 탓하는 박 당선인 |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공직 후보자 인사청문회와 관련해 “죄인처럼 혼내는 청문회 때문에 나라의 인재를 데려다 쓰기가 어렵다”고 말했다고 한다. 엊그제 강원지역 새누리당 의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다. 김용준 총리 후보자가 언론의 검증을 견디지 못하고 낙마한 데 따른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셈이다.
한마디로 본말이 전도됐다. 김 후보자 사퇴 파동의 원인은 박 당선인이 기초적인 검증조차 하지 않은 채 밀실에서 ‘나홀로 인선’을 한 탓이다. 그것을 ‘신상털기’에 나선 언론이나 정치권 문제로 돌렸으니 어이가 없다. 총리 후보자를 제대로 추천하지 못한 데 대한 반성은 꿈도 꾸기 힘든 모습이다. 짐짓 체면 차리려는 제스처가 아니라 실제로 문제의 원인을 깨닫지 못했다면 진실로 큰일이다. 비슷한 참사는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 전 후보자에게 대통령직인수위원장 자리를 유지하도록 한 데서도 박 당선인의 오만한 인식이 드러난다. 총리 자격이 없다고 물러났으면 인수위원장도 내놓는 게 순리다. 김 전 후보자가 인수위원장을 계속하는 건 언론과 국민이 들이댄 검증 잣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로밖에 볼 수 없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청문회가 죄와 허물을 확인하는 자리이기보다 능력을 검증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고 한 것도 문제다. 과거 관직에 있던 사람치고 허물없는 사람이 없으니 모두 묻어두고 능력을 보자는 것인데, 전형적인 견강부회이다. 때 묻은 사람들이 엄격한 검증 잣대에 지레 겁먹고 미리 한 자락 깔아두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회가 투명해지면서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잣대는 더 엄격해질 수밖에 없다. 도덕성을 갖추지 못한 공직자의 능력이란 사리사욕만 채우는 재주나 수완에 불과할 뿐이다.
박 당선인은 또 엊그제 사생활 부분은 비공개로, 정책 부분은 공개로 진행하는 미국의 청문 절차를 언급하면서 청문 제도의 개선 필요성을 언급했다고 한다. 하나만 알지 둘은 모른다. 미국은 청문회에 앞서 인사권자의 지명 단계에서 200여가지 내용의 세밀한 매뉴얼로 50일에 걸친 연방수사국(FBI)의 사전조사 따위가 이뤄진다. 비공개로 이루어지긴 하지만, 검증 절차는 우리보다 더 엄격하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
물론 국회 청문 절차도 필요하면 개선해야 한다. 중요한 건 인사권자의 지명 단계에서 폭넓은 의견 수렴과 체계적인 검증이 이뤄지는 것이다. 늦기 전에 자신의 인사 철학, 인사 스타일을 전면 쇄신하기 바란다. 이대로라면 새 정부 출범 전에 조각이나 제대로 이뤄질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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