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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법주권 이어 공공정책마저 흔드는 한-미 FTA |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 시행이 2015년으로 연기된 가장 큰 이유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탓이었다고 한다. 그동안 자동차업계와 그 이해를 대변하는 일부 정부 부처와 국회의원에게만 책임을 돌린 것은 한갓 눈속임이었다. 한-미 에프티에이가 사법주권은 물론 입법주권까지 흔들어 국가의 공공정책 수립 및 집행권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된 셈이다.
한-미 에프티에이는 자동차의 배출가스 규모에 따른 차별을 2015년까지 ‘금지된 무역기술장벽’에 포함시켰다. 이는 대형차를 주로 생산해 판매하는 미국 업체들의 요청에 따라 미 정부가 추가협상에서 관철시킨 조항이었다. 배출가스 배출량에 따라 보조금 혹은 부담금을 물리는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는 이 제도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소관부처인 환경부는 지난해 11월에야 이 제도의 근거가 되는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안을 심의중인 국회에 알렸고, 국회 환경노동위는 올해 하반기로 되어 있던 시행 시기를 2015년으로 바꿔 처리했다. 이에 앞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지난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소송을 제기하면서 사법주권 침해의 우려가 현실화한 바 있다.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는 이 정부가 국가적 차원의 온실가스 감축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08년부터 추진했다. 2020년 국가 온실가스 30%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송부문 온실가스를 34% 감축하기로 했는데, 핵심적 정책수단이 바로 이 제도였다. 수송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7%에 이르는데다 우리 소비자의 중대형 승용차 선호도가 높아 개선의 여지가 컸다. 게다가 유럽 등 선진국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른 자동차 규제가 강화되는 현실에서, 이 제도가 우리 자동차업계에 기술 개발을 위한 채찍과 당근이 되리라 기대도 했다. 그런 제도가 한-미 에프티에이로 말미암아 표류하게 된 것이다.
협상이 졸속이었다면 대처라도 잘했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는 눈뜬장님이나 다름없었다. 수입차협회가 보낸 공문을 받고서야 문제점을 알게 됐다. 지난해 8월 국회에 이 법안을 제출할 때까지만 해도 정부는 부처간 이견은 물론 대형차 판매 감소를 우려하는 우리 자동차업계까지도 모두 설득했다며 시행에 자신감을 보였다. 한-미 에프티에이 함정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국가 주권이 이렇게 위협받는다면 정부가 할 일은 하나다.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11월 국회가 먼저 비준하면 발효 후 3개월 안에 미국 정부에 재협상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제 머뭇거려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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