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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철학도 비전도 안 보이는 ‘무소신 경제팀' |
박근혜 새 정부의 3차 인선 발표가 어제 있었다.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와 통일·여성부 등 11개 부처의 장관 후보자가 발표됐다. 후보자 면면을 보면 한마디로 실망스럽다. 관련분야 전문가라고는 하지만 뚜렷한 소신이나 실천력을 갖춘 인물이라고 볼 수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가장 우려되는 인사가 경제팀 수장으로 내정된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다. 새 정부가 경제부총리를 부활시킨 것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경제팀을 총괄할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기 때문일 터이다. 하지만 현 후보자의 경력 등을 볼 때 그런 리더십이나 역량은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고 박 당선인이 강조해온 경제민주화에 대한 철학이나 비전을 갖춘 인물도 아니다. 그는 경제관료 출신이지만 주요 보직을 거친 적도 없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 입맛에 맞는 행보를 해온 전형적인 보신형 관료다. 5년 만에 부활시킨 중요한 경제부총리 자리에 이런 함량 미달 인사를 내정한 박 당선인의 의중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진영 인수위 부위원장의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도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박 당선인이 그렇게 복지를 강조해 놓고 정작 그 업무를 담당할 수장에 비전문가를 앉힌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대표적인 친박 의원인 진 후보자이기에 박 당선인의 복지철학을 충실히 대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복지에 대한 기본 개념이나 철학도 없는 인사가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을 높여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로 내정된 방하남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 사회의 최대 갈등 현안은 노사문제다.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뿐 아니라 노동현장 곳곳에는 비정규직 문제 등 바로잡아야 할 현안이 수두룩하다. 특히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박 당선인이 추구하는 ‘국민행복시대’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방 후보자는 연금분야 전문가일 뿐 노동문제에는 사실상 문외한이다.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노동문제를 어떤 철학을 가지고 균형있게 풀어갈지 의문이다.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 김종훈 벨연구소장을 내정한 것도 의외다. 그는 알려진 대로 벤처업계 신화를 쓴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벤처기업과 연구소, 대학에서 대부분의 경력을 쌓았다. 이런 경험이 박 당선인이 강조하는 ‘창조 경제’를 입안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부처의 기능을 뜯어다 조합해 만든 공룡부처 미래부를 이끌 능력이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만약 이번 ‘실험 인사’가 실패할 경우, 미래부를 성장 동력으로 삼으려는 박 당선인의 계획도 적잖은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조직 개편안의 국회 통과 전에 3차 인선을 발표한 것도 절차상 옳지 않다. 새 정부 출범이 코앞에 닥쳐 불가피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정부조직법 통과가 늦어진 데는 ‘원안 통과’를 고집하는 박 당선인의 책임이 더 크다. 그런 마당에 야당의 협조만을 당부하며 인선안을 밀어붙인 것은 독선적인 행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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