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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시장친화적 방식으로 물가안정 기조 다져야 |
연초부터 물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전기료와 시외·고속버스 요금 인상에 이어 밀가루·장류·과자 같은 생필품 값이 크게 뛰었다. 김치·빵·라면 등 다른 식료품 값도 들썩이고 있는데다 기름값마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가뜩이나 소득이 줄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서민들로서는 한숨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물가 불안은 새 정부에 큰 부담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제 첫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물가 안정을 강조하고 어제 정부는 긴급 물가대책회의를 열어 물가 집중관리에 나서겠다고 한다. 정부는 농식품 가격 안정을 위해 봄채소가 출하되는 4월까지 수급안정 대책을 시행하고 가격을 올린 식품업체 중 불공정거래 행위가 발견되면 부당이익 환수에 적극 나서겠다고 한다. 업계의 가격 현실화 요구도 무시할 수 없지만 독과점 품목은 짬짜미(담합) 요인이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생활물가가 오르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쓰되 이명박 정부가 범한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때려잡기 식으로 물가를 억누를 수는 없다. 인위적인 가격통제보다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짬짜미를 방지해 물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서민경제를 안정시키겠다며 52개 주요 생필품으로 구성된 물가지수를 만들어 호들갑을 떨었지만 48개 품목의 값이 올랐다. 특별관리하겠다던 생필품 가격들이 되레 줄줄이 오르면서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더욱 팍팍하게 만든 것이다. 개별 품목의 물가를 관리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구시대적이고 먹히지도 않는다.
박 대통령은 국정과제에서 임기 내 소비자물가를 선진국 수준인 2%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물가 안정은 서민복지와 직결되므로 새 정부 초기에 물가 안정 기조를 단단히 다져야 한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 하위 20%인 서민의 엥겔지수는 8년 만에 최고 수준이었다. 지난해 물가가 안정됐음에도 서민들의 엥겔지수가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식료품 물가가 상대적으로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물가지수가 안정적이라고 통계치를 들이밀어도 이를 체감하지 못하면 국민은 등을 돌리기 마련이다.
환율 하락에도 원자재값 상승으로 물가 인상 압력이 여전히 존재해 새 정부가 경기 진작에 나서면 물가는 지금 수준보다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이런 때일수록 중앙은행의 책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중수 한은 총재가 ‘물가 안정 기조를 유지하는 가운데’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우리 경제의 성장세 회복을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고 통화 정책을 운영하겠다”고 한 것은 본분을 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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