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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일본의 역사 직시 없이 한-일 관계 발전 어렵다 |
우리나라에서 새로 임기를 시작하는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는 대일정책과 관련해 큰 의미를 지닌다. 3·1 운동이 일제의 가혹한 식민통치에서 벗어나려는 대대적 민족운동이었기 때문에 새 대통령은 관례로 취임 뒤 처음 맞는 3·1절 기념사를 통해 대일정책의 큰 방향을 밝혀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기념사에서 “일본이 우리와 동반자가 되어 21세기 동아시아 시대를 함께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역사를 올바르게 직시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도 했다. 민주화 이후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높은 수위의 대일 메시지다. 역사 문제를 외면하고도 좋은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일본의 태도에 쐐기를 박은 적절한 문제인식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집권 첫해인 2008년 3·1절 기념사에서 매우 유화적인 대일 자세를 보였다. “한국과 일본도 서로 실용의 자세로 미래지향적 관계를 형성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라며 역사보다 미래를 앞세웠다. 그리고 집권 4년째까지 더없이 좋은 관계를 과시했으나 결국 일본군 위안부와 독도 문제로 파국을 맞은 채 임기를 마쳤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도 역사와 영토 문제에 걸려 전반기 우호, 하반기 마찰이라는 ‘공식’을 피해가지 못했다. 한·일 어느 일방의 노력으로 역사 문제가 쉽게 돌파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예는 없다.
일본은 최근에도 한쪽에서는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내면서 다른 한쪽에서 역사 문제에 대한 도발을 강화하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지난 28일 중의원 외교연설에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독도 문제를 거론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앞서 일본 정부는 22일 시마네현 주최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정부 고위관리를 처음 파견한 바 있다. 이 모든 게 박 대통령이 당선 이후 방한한 누카가 후쿠시로 특사 등을 통해 한-일 관계의 진전을 위해선 역사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낸 뒤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물론 한-일 간에 역사 문제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부상하는 중국과 북핵으로 요동치는 지역 정세에 대한 대응, 경제·문화·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협력 등 공통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역사 문제에 대한 일본 쪽의 변화가 없는 한 어떤 협력도 질적, 양적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일본이 먼저 대답을 내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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