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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육사 전성시대’의 폐해가 걱정스럽다 |
박근혜 대통령 인사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지나친 쏠림이다. ‘성시경’(성균관대·고시·경기고), ‘고육당’(고시·육사) 따위의 비아냥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인사가 특정 학교 출신이나 집단에 편중돼 있음을 뜻한다. 이런 인사의 쏠림은 ‘탕평·화합의 실종’ 차원을 넘어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박 대통령이 남재준 전 육군참모총장을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에 지명함으로써 국가안보실장(김장수), 국방부 장관(김병관 후보자) 등 외교안보 라인의 핵심을 모두 육사 출신이 장악하게 됐다. 여기에 박흥렬 청와대 경호실장까지 더하면 새 정부 핵심 요직에 육군 대장 출신이 넷에 육군참모총장 출신만 세 사람이다. 예전에는 군 출신을 기용하더라도 육·해·공군 사이의 균형이라도 유지하려고 애썼으나 그런 고민 따위는 찾아볼 수도 없다.
육군 대장 출신들의 외교안보 라인 장악은 여러모로 우려스럽다. 무엇보다 대북정책이 강경 일변도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평생 군에 몸담고 살아온 사람들은 아무래도 군사적 정향이 앞설 수밖에 없다. 단순한 군사 대응 차원을 넘어서 복잡하고 다변화된 외교안보 환경에 유연하고 기민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 핵실험 등으로 한반도 정세가 불안해진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외교안보 핵심을 대부분 군 출신으로 채운 것은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파탄 난 남북관계가 회복되기는커녕 더욱 악화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들이 외교안보 라인을 장악함으로써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육사 선후배 동창회 내지는 전직 육군 대장들의 모임으로 변질해 버렸다. 이들은 과거 군에 있을 때부터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끈끈하게 얽혀 있는 사이다. 외교안보 라인의 다른 멤버들이 이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도 분위기에 압도될 가능성이 크다. 견제와 균형의 추가 무너진 기형적 논의 구조 속에서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기를 기대하긴 힘들다.
특정 군맥의 득세는 그 자체로 매우 우려할 만한 일이다.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 국정원 등 권력 핵심부를 모두 육사 출신이 장악한 것은 현 정부의 권력 지도가 완전히 박정희 대통령 시절로 돌아갔음을 의미한다. 차지철 경호실장-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시절도 떠오른다. 특정 군맥이 군 인사 등은 물론 권력 내부 곳곳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벌써부터 ‘신군부 시대’니 ‘육사 전성시대’니 하는 따위의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최소한의 균형감각마저 상실한 박 대통령의 인사가 불러올 폐해가 참으로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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