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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공정방송 보장은 말이 아니라 제도·행동으로 |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공영방송 이사 임명요건 강화와 언론 청문회 개최,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 퇴진 촉구 등이 수용되면 여당의 개정안대로 통과시키겠다고 제안했다. 정부조직법과 현안의 주고받기식 처리다. 하지만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즉각 제안을 거부하며 민주당이 방송을 장악하려 한다고 되레 공세를 폈다. 정부조직법 논의가 ‘방송 공정성 보장’이라는 본질을 벗어나 정치적 이해다툼으로 변질돼 가는 모양새다.
우선 민주당의 ‘3대 조건’ 연계는 원칙을 잃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협상 쟁점인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인허가권의 미래창조과학부 이관 등은 방송의 독립성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네트워크와 채널편성권을 보유한 플랫폼 사업자가 독임제 부처의 규제를 받게 되면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공영방송 이사 추천 요건을 방통위원 과반수 찬성에서 3분의 2 찬성으로 높일 것 등을 조건으로 여당 개정안을 수용하는 것은 또다른 형태의 방송 독립성·공공성 포기나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의 고집이 워낙 강하고 북핵을 둘러싼 정세가 긴박해 타협이 필요했다고 쳐도 3대 선결조건은 정부조직법과 맞교환할 대상이 아니다.
청와대와 여당의 태도는 한마디로 볼썽사납다. 제 잘못은 철저히 외면한 채 상대방에게 정부조직법 협상 교착의 책임을 떠넘기는 데만 열중할 뿐이다. 정부조직법이 처리되지 못한 것은 박 대통령의 원안 통과 고집이 주요 원인이며, 대통령 눈치보기에 바쁜 새누리당의 무소신이 그다음 원인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방송 장악을 할 의도가 전혀 없다”고 밝히고 있으나, 정부·여당의 행태는 그 진정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19대 국회 개원의 합의사항인 언론 청문회는 해를 넘겨서도 감감무소식이다. 국회 증인 불출석으로 벌금 800만원에 약식기소되고 감사원 고발까지 당한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박사학위 논문을 표절한 김재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도 요지부동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선거 과정에서 공정성을 잃은 방송의 수혜자나 다름없다. 이러니 “방송 장악 의도가 없다”고 백번을 외친들 참뜻이 담겨 있다고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공정방송은 말이 아니라 제도와 행동으로 보장해야 한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방송 독립성·공정성을 침해할 소지가 큰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손질하는 것이 옳다. 아울러 정부조직법 협상과 별개로 언론 청문회 개최와 김재철 사장 퇴진 등도 당장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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