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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걱정스러운 야권의 분열과 지리멸렬 |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 새누리당의 무기력, 야권의 지리멸렬. 지금의 정치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박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 소통 부재 현상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빨리 그리고 심각하게 찾아왔다. 여권의 다른 한 축인 새누리당은 역대 어느 여당보다도 대통령의 눈치나 살피는 무기력한 정당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실망스러운 것이 야권의 한심한 모습이다.
민주통합당은 대선 패배 이후 석달이 지나도록 표류 상태를 계속하고 있다. 반성과 성찰, 개혁과 쇄신 등의 단어가 사라진 지는 오래다. 차기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 일정 등에 간신히 합의했지만 주류-비주류의 낡은 구도 속에서 진흙탕 싸움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서서히 침몰해 가는 난파선, 바로 그것이 지금의 민주당 모습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의 의원직 상실로 자리가 빈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 후보 출마를 둘러싼 야권의 흐름은 더욱 심각하다. 안철수 전 서울대 교수가 출마를 선언한 가운데 노 대표의 부인 김지선씨는 어제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민주당에서도 이동섭 지역위원장이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대선 당시 어쨌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 맞서 힘을 합쳤던 세력들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이들의 출마는 한결같이 약점을 안고 있다. 노 대표 부인의 출마를 놓고는 ‘지역구 세습’ 논쟁이 한창이다. 김씨가 40여년간 민주화운동 등에 앞장서왔다는 점에서 진보정당의 후보로서 손색이 없다는 옹호론도 있지만, 진보와 개혁의 이미지가 생명인 진보당에 걸맞지 않은 선택이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안철수 전 교수의 노원병 출마 계획을 두고도 ‘감동이 없는 정치’라는 비판이 무성하다. “전국 민심의 바로미터인 서울에서 유권자의 평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명분은 “새 정치를 한다면서 너무 쉬운 길을 가려고 한다”는 비판에 비하면 아무래도 궁색해 보인다. 안 후보가 출마할 경우 민주당이 후보를 내는 게 정치도의상 맞는 일인지도 의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야권이 각자 살길을 찾기 위한 궁리에만 몰두할 뿐 정치 혁신과 야권의 재구성 등을 위한 진지한 고민을 포기했다는 점이다. 야권연대에 대해 ‘철 지난 모델’이라는 사망선고를 내렸다면 이를 대체할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마땅한데도 그럴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야당의 지리멸렬은 여권에 어부지리만 안겨주며 이들의 궤도이탈 현상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야권 전체의 대오각성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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