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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종교인의 신앙과 양심을 능멸한 국방부 |
국방부가 사상검증을 통해 군종신부로 추천된 이들을 탈락시켰다고 한다. 제주 해군기지, 천안함 등 세속에서 심각한 마찰을 빚는 사안에 대해 일정한 관점을 요구하는 질문을 던져 당락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개신교와 달리 종단이 직접 후보자를 추천하는 가톨릭으로서는 참기 힘든 일이다. 단수로 추천한 후보들이 위험한 국가관과 안이한 안보의식의 소유자로 단죄됐으니, 가톨릭이 자칫 종북 딱지를 받기 십상이다. 이명박 정부 말년에 이뤄져 다행이지만, 박근혜 정부로서는 치워야 할 새로운 숙제를 하나 더 떠안았다.
던져진 질문 내용 자체가 시대착오적이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하나님의 뜻일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떻게 세속의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신의 뜻을 운운할 수 있을까. 왕권은 신이 부여했다던 절대왕정의 왕권신수설을 신봉하지 않고는 들이밀 수 없는 질문이었다. 부정적이거나 유보적인 답변을 내놓게 되면 국가관을 의심받게 된다. 통과되기 위해선 수긍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따라서 특정 관점을 강제로 요구하는 종교적 양심에 대한 시험이 아닐 수 없었다. 중세 마녀사냥에서나 이루어질 법한 심문을 21세기 대한민국 국방부가 버젓이 종교인에게 한 셈이다.
정책 내용보다 이행 과정의 잘못을 지적한 답변은 지극히 온당했다. “잘못된 과정으로 사람들이 아파하는데, 그것이 과연 하느님의 뜻이겠는가?” 군은 5%도 안 되는 주민들이 한 결정을 주민 총의라고 왜곡해 기지 강행의 빌미로 삼았고, 그로 말미암아 마을 공동체는 풍비박산 났다. 하지만 사실을 사실대로 지적한 이 대목은 괘씸죄의 빌미가 되었다. 제주교구 등 한국 가톨릭 일부는 강정 해군기지 건설 반대에 앞장서왔다. 국방부로서는 분풀이도 생각했을 법하다. 졸렬하기 짝이 없다. 공사 구분도 못하고, 근대국가의 기본인 정교분리 원칙과 양심과 신앙의 자유에도 무지하다. 오로지 임명권자와 코드를 맞추고 아부나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고조되는 안보위기 상황에서도 국방부 별들은 떼지어 골프나 치러 다녔을 것이다.
군종장교는 비록 군인이지만, 본질은 종교인이다. 그들은 신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는 데 일생을 바치기로 한 운명이다. 원수마저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더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또 스스로 실천해야 할 사람이다. 그런 이들에게 전투병과 규율을 요구한다면, 차라리 종군장교제를 없애야 한다. 그건 군내 선교를 미끼로, 종교를 길들이고 양심을 시험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부에선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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