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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새 교황, 인간 존엄성의 수호자 되기를 |
교황 프란치스코의 탄생과 함께 가톨릭은 여러 가지 새 역사를 쓰게 됐다. 어제 선출된 새 교황은 1200여년 만의 첫 비유럽 출신이며, 제국주의와 독재체제에 시달린 남미 태생이고, 첫 예수회 소속 교황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물론 교황한테 이런 이야기는 호사가의 관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여기에 주목하는 까닭은 그만큼 새 교황에게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제1세계가 아닌 제3세계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소외되고 억눌린 이들의 곁을 지키고, 상생과 평화 그리고 인간 존엄의 가치를 수호하는, 행동하는 스승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물론 알려졌다시피 그는 교리에선 전통적 가치를 중시해왔다. 동성애·낙태·피임·안락사 등에 비판적이다. 하지만 동성애자의 권리는 존중하고, 질병 예방을 위한 피임에 찬성하는 등 세상과의 대화를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의 삶에 충실한 원칙주의는 비리와 권력 암투, 관료주의로 말미암은 바티칸의 위기를 극복하는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는 그로 하여금 사회정의와 관련된 문제에 누구보다도 혁신적인 자세를 취하게 했다.
교황은 12억 가톨릭 신도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영적 삶은 물론 일상적 삶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이런 영향력 때문에 세상의 권력은 그를 무겁게 받아들인다. 그는 2007년 라틴아메리카 주교단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곳에서 살고 있다. 가장 빨리 성장하면서도 빈곤의 고통은 가장 늦게 줄어드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지난해 사제 서품식에서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 영적으로뿐만 아니라 온몸으로 가르침을 실천하라’고 강조했다. ‘세상 속으로’는 작고한 김수환 추기경이 억눌린 이들 편에서 독재와 맞설 때 높이 들었던 사목 지침이었다.
그는 아르헨티나 군사독재정권의 처참한 인권유린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후 빈곤, 차별, 불평등, 인권침해 등 불의에 대해 비타협적 자세를 견지했던 것은 이런 과거에 대한 반성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지난해 아르헨티나 주교단 공동성명을 통해 교회의 과오를 인정하고 인간 존중의 가치를 수호할 것을 다짐했다. 기독교는 신의 숨(생명)으로 인간이 창조됐다고 믿는다. 인간에겐 신성이 깃들어 있고, 따라서 인간 존엄은 불가침의 가치라는 믿음이다. 바로 그 가치가 제국주의와 독재정권에 의해 유린당하고, 자본에 의해 파괴되고, 가난에 의해 제약당하는 걸 지켜본 게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이제 교황으로서 세계인의 존엄성을 지키는 보루가 되기 바란다. 땅의 평화를 통해 하늘에 영광을 돌리기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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