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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원청업체의 무책임이 중대 재해 부른다 |
저장탑 폭발사고로 사상자가 17명이나 발생했는데도, 대림산업 쪽은 아직도 말장난 수준의 원인 논란을 계속하고 있다. 공사 전 저장탑 안의 가연성 가스를 제거했으므로 폭발은 가스가 아니라 분진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야 공사를 맡은 협력업체에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지 몰라도, 중대 재해 앞에서 빠져나갈 구멍부터 찾고 보는 원청업체의 행태가 가증스럽다. 그러나 이는 원청-하청-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책임회피 구조, 사고 발생 시 원청에 대한 제도적 면책에서 비롯된 것이니 원청의 뻔뻔함만 탓할 순 없다.
이번 사고는 상식의 눈으로 보아도 원청의 책임이 막중하다. 맨홀 뚜껑 공사를 하기 전 저장탑 안의 위험물질을 제거하는 건 원청 몫이었다. 분진도 밀도가 높으며 불똥만 튀어도 폭발한다. 거기에 가연성 가스가 잔류해 있었다면 용접작업 중 폭발은 피하기 어렵다. 사실 대림 쪽은 저장탑 청소 과정에서 폭발을 예방하기 위한 조처에 소홀했다. 분진을 빨아들이는 집진장치도 이용하지 않았고, 물청소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작업자에 대한 사전 안전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공사 중 수시로 저장탑 내부 환기 작업도 소홀히 했다. 무슨 사고가 나도 원청은 책임을 모면하다 보니 애당초 안전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이 공장은 지난해에도 폭발사고가 발생했지만, 누구 하나 처벌당하지 않았다.
원청업체의 이런 어처구니없는 태만과 발뺌은 이미 고질화됐다. 최근 삼성전자의 불산 누출사고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7월 이마트 탄현점에서 협력업체 노동자 4명이 기계실 냉방기 점검작업 중 가스 질식사를 했지만, 이마트 쪽은 벌금 수백만원만 물었다. 하청업체 직원 3명이 숨진 삼호조선 폭발사고, 40명이 숨진 이천 냉동창고 공사 화재사고에서도 사업주는 벌금만 물었다.
물론 기업의 하청을 비난할 순 없다. 그러나 화공 및 화학물질 취급 공장의 설비나 장비의 보수·정비 작업은 중대 재해와 직결될 수 있다. 그런 작업의 책임을 온전히 하청에 맡겨선 안 된다. 지금은 심지어 5단계 하청까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비용절감과 책임회피에만 골똘한 형국이다. 따라서 중대 재해에 대해서는 원청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최고경영자에게 법적 책임을 지운다면 사고 예방이 아니라 책임회피에만 잔머리 굴리는 일은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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