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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제2의 최시중’ 우려 낳는 방통위원장 인사 |
박근혜 대통령이 4선 의원 출신의 측근 인사 이경재씨를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후보자로 지명했다. 가장 중립적인 사람을 기용해야 할 자리에 가장 정치적인 인물을 등용한 셈이다. 언론계와 야당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박 대통령은 정부조직 개편안을 놓고 여야가 한창 대립하고 있던 지난 4일, 담화를 통해 “언론을 장악할 의지도 없고 할 수도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인사는 그 말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지상파 방송의 허가·재허가권이 있는 방통위원장 자리에 정치인, 그것도 측근 인사를 지명하고 그런 말을 믿으라면 누가 믿겠는가. 마치 한-일 축구 경기의 심판에 우리나라 심판을 기용하고서 공정하게 심판을 보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박 대통령이 진정으로 언론을 장악할 생각이 없다면, 당장 이 후보자의 지명을 철회하고 중립적 인사를 새로 지명하는 게 마땅하다.
이 후보자가 정치에 입문한 뒤 보인 행적을 봐도 방통위원장 후보로 적절하지 않다. 그는 18대 국회에서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을 지내며 지금의 기형적인 종합편성 방송을 낳은 미디어법 강행 처리에 주도적 구실을 했다. 그렇게 탄생한 종편은 여론의 다양성 확보 및 국제경쟁력 향상, 고용 증진이라는 애초 취지와는 달리 미디어 생태계를 교란하고 신뢰를 좀먹는 괴물 노릇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이 후보자의 책임이 작지 않다. 더구나 이 후보자는 김영삼 정권 때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권력의 편에 서는 자세를 보여왔다. 이런 사람에게 정치적 중립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방통위를 철저하게 정치로 오염시킨 사람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그는 자신의 정치 멘토인 최시중씨를 위원장에 임명한 뒤 방송 장악 지휘자 노릇을 하도록 했다. 그의 지휘에 따라 이른바 캠프 출신 인사와 친정권 성향의 언론인들이 낙하산 사장으로 투입되고, 방송사들은 이명박 정권 5년 내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이런 적폐를 걷어내고 방송의 공정성을 회복시켜야 할 시기에 박 대통령은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려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최시중의 실패’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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