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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마지막 피난처마저 짓밟은 ‘대한문 농성장 철거’ |
서울 중구청이 어제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설치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농성 천막을 철거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화단을 새로 조성하고 묘목을 심었다. 앞으로 수문장 교대식을 보러 오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남루한 천막 대신 깨끗하게 단장된 화단과 말끔하게 치워진 도로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창피해해야 할 것은 천막의 남루함이 아니다. 억울함을 호소할 길이 막혀 엄동설한에도 길바닥 잠을 자던 노동자들을 군사작전 치르듯 쫓아낸 우리 사회의 폭력성이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누구인가. 2009년의 정리해고 이후 노동자와 가족 등 23명이 자살이나 돌연사로 세상을 떠나는 등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국회 청문회에서 불법적 회계조작과 ‘기획 도산’의 증거들이 나왔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대선 직전에는 그래도 희망이 보였다. 새누리당이 두 차례나 기자회견을 하면서 대선 후 첫 임시국회에서 쌍용차 국정조사를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이 끝나자마자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가 국정조사에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내더니, 꿩 구워 먹은 자리가 돼버렸다.
이렇듯 말할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지탱한 통곡의 벽이 대한문 농성장이었다. 노동자들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현실을 고발하고 함께 살자고 호소한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쌍용차뿐만 아니라 강정마을, 용산참사 등 시대의 아픔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든 곳이기도 하다. 독재 시절에는 명동성당이 있었다. 언로가 꽉 막힌 한국 사회에서 억울함을 품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함께 아파하고 같이 분노했다. 이런 곳을 짓밟았으니, 하소연할 데 없는 우리 사회 약자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옆에는 윌리엄 토머스 핼런백이라는 사람이 ‘전쟁 반대’와 ‘핵무기 전면폐기’를 촉구하는 천막농성을 벌였는데, 무려 28년 동안 이어졌다. 철거는 없었다. 오히려 우산과 방수천으로 만든 천막은 ‘파수꾼 초소’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가 머물던 라피엣 공원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우리는 농성 시작 1년 만에 천막을 기습 철거했다. 우리 사회가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유지할 능력과 자세가 부족함을 여실히 드러낸 셈이다. 그래도 아직 기회는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나서 이미 여야가 합의하고 약속한 쌍용차 국정조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그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쌍용차 노동자들을 절망의 벼랑으로 내몰아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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